인천 공단소방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기고 / 문찬식 기자 / 2013-11-25 17:34:51
    • 카카오톡 보내기
    논현119안전센터 소방위 이현철

    ▲ 이현철 소방위
    “2010년 11월 23일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모두들 위험하다고 육지로... 육지로... 피해 나가는데... 우리 소방관은 그 곳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존재의 이유다.

    지난 2010년 11월23일 22시경 인천연안부두 화물선착장에서 화물선박으로 소방차량 10여대와 소방공무원 30여명이 절박한 심정으로 6시간여를 파도를 해치며 연평도로 향했다

    소방공무원 23년 동안 많은 사고 현장에 있었던 나도 과거 현장의 숱한 경험들로 어떠한 상황이 주어져도 대처할 자신이 있었지만 전쟁터인 연평도는 어떤 환경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긴장되었지만 동료들과 후배들을 다독여야 했기에 마음을 굳게 다 잡았다.

    화물선박 소방차안에서 밤새 뒤척이며 불안한 마음에 가족 생각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며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하지만 가족 보다는 연평도의 긴박한 상황과 라디오의 속보는 다시한번 진압 장비와 안전 장비를 점검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그때 어디선가 화재로 인한 연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옆에 동료직원에게 “어디 불났니?” 하고 물어보니 “부센터장님 저 앞 좀 보세요” 하는 말에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연평도에서 화재로 인한 불길과 연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인천 쪽으로 불어오는 것이였다.

    아! 저기가 연평도구나... 약1시간정도 배를 더 타고 동틀 무렵쯤 우리는 연평도에 도착했다. 화물선박에서 하선하던 중 소방차량 무전기에서 불발된 폭탄이 많이 있으니 화재진압중 안전에 만전을 다하라는 무전연락이 들었을 때...

    그때서야 ‘아 내가 화재진압을 온게 아니고 전쟁터에 왔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속에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우선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집결해 진압할 구역을 나누고 해가 뜨는 동시에 화재 진압을 시작했다.

    새벽녁엔 주민들이 간혹 보였지만 아침에는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의용소방대 몇 명만이 보였다. 다행이 그분들 덕분에 물이 떨어진 소방차가 저수지에서 물을 보충 받을 수 있었고 그 분들의 길 안내로 불발탄 옆을 지나다니면서도 아무 안전사고 없이 화재진압을 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자신의 안전보다는 의용소방대의 일원으로 비상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의용소방대원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다.

    사실 우리 소방관들은 아무런 준비도, 정보도, 없었지만 연평도를 지켜내고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우리 소방관들 마음이었기에 컵라면, 우유로 식사를 해결하고 초등학교 교실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이겨 낼 수 있었고 그렇게 2010년 11월 연평도의 3박4일이 지나갔다.

    요즘 문득 연평도 포격 현장에서 같이 고생했던 소방관들의 얼굴과 소식들이 궁금하며 항상 어디에 있든 인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임무를 다하는 소방관들이 자랑스러우며 봉사하는 인천 소방이 있다는 것을 인천 시민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은 흘러 벌써 3년이 지났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평도의 모습은 일상생활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아직도 섬 곳곳에는 아물지 않은 아픈 상처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인천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 아름다운 연평도의 모습으로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다시는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노력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 같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