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문화재단, 공공예술프로젝트 '신당동 시간매핑' 진행

    기획/시리즈 / 김현우 / 2013-11-27 15: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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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볶이의 비밀·풀무고개… 되찾은 神堂 마을의 옛 기억
    ▲ 조선시대 서울의 사소문 중 하나로 도성 안에서 죽은 시신을 내보냈던 광희문.
    떡볶이원조 마복림 할머니 우연히 자장면에 떨어진 떡 맛본 뒤 양념 개발

    도성 안에서 죽은 시신 광희문 밖으로 버려져… 제사 용품 파는 시장 형성

    [시민일보] 며느리도 비법을 모른다는 신당동 떡볶이.

    이것을 처음 만든 사람은 1990년대 중반 TV광고에서 "우리 떡볶이 고추장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대사로 유명해진 마복림 할머니다.

    6.25전쟁 직후 우연히 자장면에 떨어진 떡을 먹고 맛이 좋아 고추장에 춘장을 섞어 팔기 시작한 것이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가 됐다.

    '떡볶이타운'이 있는 신당동에 위치한 광희문(光熙門)은 도성 안에서 죽은 시신을 밖으로 내보내는 문이었다.

    이 문을 지나면 나오는 동네가 바로 신당동이었고, 혼을 위로하는 신당(神堂)이 많아 오늘날의 '신당동'으로 불리게 됐다.

    서울 중구 신당동 일대는 곳곳에 역사적 사실이 묻어 있다.

    이곳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신당동의 흩어져 있는 기억과 기록,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과 같다.

    (재)중구문화재단은 지난 7~11월 충무아트홀이 위치해 있는 신당동 일대를 답사하며 그곳이 가지는 장소성을 재발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장간거리
    ▲ 70~80년대까지 대대적인 호황을 누렸던 대장간 거리는 현재 5곳만이 남아있다.


    현재 5곳만 남아 있는 대장간거리는 조선시대 당시 대장간이 밀집되어 있어 '풀무고개'라고 불렸다.

    지금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옛 훈련도감 자리였기 때문에 군사들의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대장간이 필요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아울러 대장간은 무기·농기구 이외에도 작두를 생산했다.

    이는 시구문(도성 안에 시신이 나가던 문)이었던 광희문으로 인해 이 일대가 신당 즉 무당집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망자를 위한 굿을 하기 위해 구술, 칼, 작두 등 주술 행위에 필요한 물건을 제작했다.

    1960~70년대에는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되어 있는 서울을 복구하고 박정희 정권 아래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전개된다.

    이때 을지로의 건축자재상과 함께 대장간거리 또한 건물 해체에 사용되는 해머 등 건축장비 생산으로 100여개의 대장간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5곳이 명맥을 유지하며 농기구·공작 등을 만들고 있다.

    ▲옛 시구문시장 일대

    예전부터 도성 안에는 무덤을 만들 수 없기에 사람이 죽으면 광희문이나 서소문을 통해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서 광희문을 수구문(水口門) 혹은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부른다.

    망자가 있는 곳에는 무당이 있게 마련이다.

    광희문 밖에는 자연스레 무당이 모여들었고 신당도 생겨났다.

    그곳이 지금의 신당동(新堂洞)으로, 조선시대에는 신당(神堂)이라 했고 갑오개혁 때는 발음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

    광희문 밖으로 나간 시신은 신당동, 왕십리, 옥수동, 금호동 쪽에 묻혔으며 1920년대 문화주택 건설, 1970년대 재개발 과정에서 백골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광희문(시구문) 앞으로는 시장이 형성됐다고 한다.

    제사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용품과 떡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며 현재도 시구문 떡집이라는 간판의 떡집이 있다.

    ▲신당동 떡볶이타운
    ▲ 떡볶이의 원조 마복림 떡볶이 가게가 위치한 신당동 떡볶이 타운.


    며느리도 비법을 모른다는 떡볶이, 그룹 'DJ DOC'의 노래에도 나오는 '허리케인 박'은 신당동 떡볶이타운을 떠오르게 한다.

    현재는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인 마복림 할머니집과 떡볶이집 6곳이 합병한 아이러브신당동 등 떡볶이집 10곳이 성업 중이다.

    남편과 미군물품 보따리 장사를 하던 마복림 할머니는 1953년 노점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줄을 서서 사먹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1980년대부터 주변 일대에 떡볶이집이 들어서면서 타운이 형성됐다.

    떡볶이타운에서 마복림 할머니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상인회 회장이자 '허리케인 박'인 박찬영씨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떡볶이집에서 손님맞이를 위해 DJ 박스 진행을 했다고 한다.

    16세의 풋풋하던 학생은 현재 50세가 넘은 중년의 아저씨가 됐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멘트와 차림새로 여전히 DJ를 본다고 한다.

    신당동 근처에는 전국의 쌀이 모이던 중앙시장이 있다.

    쌀을 팔고 남은 묵은 쌀을 활용하기 위해 떡을 찧기 시작했고, 신당동 떡볶이타운이 활성화된 뒤로는 떡볶이타운조합에서 현재의 떡볶기용(이전에는 가게별로 떡의 크기와 굵기가 달랐음) 가래떡을 주문해 규격화된 떡을 사용한다고 한다.

    '신당동 시간매핑'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충무아트홀 주변과 광희문 일대를 비롯해 신당동 일대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 기록을 찾아내고 지역 토박이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사실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마을리서치 작업이다.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는 28일 오후 2시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되는 '2013 충무문화포럼'에서 발표한다.

    이 프로젝트의 연구를 총괄한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대표 박혜강씨, 큐레이터 이명훈씨가 참석해 '신당동 시간매핑'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연구발표를 진행한다.

    광희문과 충무아트홀을 중심으로 한 신당1동 일대를 답사한 과정과 주민 인터뷰를 통해 얻은 현장 리서치 결과물을 시대별 지도·사진·토박이 인터뷰 등과 함께 재구성해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지역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고 문화와 결합된 지역, 공간, 환경,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문화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신당동 시간매핑' 프로젝트는 오는 2014년 신진 아티스트와 지역민이 함께하는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새롭게 지역민들을 만날 예정이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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