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때 ‘초라한 커플보다 화려한 솔로가 좋다’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과 함께 평범한 여자들은(그러니까 나 같은!)평생 식음을 전폐해도 절대 나올 수 없는 비현실적인 바디라인을 뽐내는 여자가 러닝머신에서 우아하게 달리면서 나오지도 않는 땀을 닦는 척 하다 장면이 바뀌면 카리스마 돋는 정장을 입고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카드를 긁는 광고가 인기를 끌었더랬다. 당시 초라하긴 커녕 구차한 커플도 못 돼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나에게 그 모토와 광고는 정녕 닿을 수 없는 신세계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초라하건 구차하건 커플은 내 맘대로, 내 의지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화려한 솔로는 왠지 나도 열심히만 하면(그러니까 무수한 자기 계발서에서 부르짖듯 꿈을 가지고 노력만 하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고백컨대 대학에 입학해서 시작된 자취 라이프가 10년 넘게 지속되면서 대학생에서 아가씨를 거쳐 노처녀로 신분이 변하는 동안 난 한 번도 화려한 솔로인 적이 없었다. 항상 월세와 생활비와 각종 공과금에 주기적으로 고래처럼 마셔대는 술값과 알량한 품위유지비를 맞추려고 동당거리다 화려한 솔로를 꿈꿀 수 있었던(꿈만 꾸던)시기도 속절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무섭게 크고 있는 자식이 장성해서 분가하면 독거노인이 될 경우의 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점에 도달했다. 으헉! 인생은 왜 한 번도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거냐며 인생의 멱살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즈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란 책을 만났다.
그래, 화려한 솔로는 못 됐지만 궁상맞은 독거노인도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책은 그만의 비법을 일러줄 것 같은 근거 없는 믿음이 들었다. 작가부터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왔다니 혼자인 삶에 대해 편견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고자세로 싱글 족을 내려다보는 일도 없이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영양가 많은 이야기를 풀어주지 않을까. 나는 이런 기대를 품고 첫 장을 펼쳤다. 그렇게 첫 장부터 펼쳐진 저자의 체험담 플러스 싱글이라면 무턱대고 가르치려 들거나 과도하게 염려하는 일반인들과 그런 퍽퍽한 대우를 받는 싱글들의 아카데믹한 관찰기에 슬며시 웃음이 비어져 나오면서도 동시에 시쳇말로 웃픈 느낌을 절절히 받았다. 분명 오지랖을 열두 폭으로 휘감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싱글로 살아간다는 건 타인의 무수한 편견과 선입견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동시에 그런 시선들을 반사시키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강심장을 요한다. 저자 노명우는 이런 세태와 사회적 현상을 명료하게 그리면서 ‘화려한 싱글도 행복한 결혼도 없다’는 지당한 말을 한다.
사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쾌감을 느꼈다. 화려한 싱글이란 슬로건 이면에 있는 무수한 솔로들과 행복한 결혼이란 절대적 명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다종다양한 형태의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목소리라는 것이 아예 주어지지 않는 것이 한국 사회다. 그래서 진즉부터 누군가가(그러니까 드라마와 소설이 아닌 학구적인 입장에 선)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야 했는데 이제야 그런 책이 나온 것이다.
자, 이렇게 포문을 열어젖힌 저자는 1인 가구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1인 가구의 확대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자 우리 모두가 준비해야 할 미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집단에서 개인이 따로 떨어져 나와 그만의 생명력을 얻게 된 역사적 시기와 배경을 설명한다. 그렇게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설명을 지나 4인용과 1인용 테이블의 비유를 통해 혼자 사는 것의 지난함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내 시선을 끌었던 부분은 바로 ‘자기만의 방’을 간절히 염원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필요성은 어찌 보면 1인 가구보다는 4인 가구에서 더 절실할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1인가구는 그야말로 자기만의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1인 가구에게 자기만의 공간이란 원룸, 즉 책꽂이와 도마만 간신히 올라간 싱크대가 마주보고, 침대에 누우면 원하지 않는 변기가 보이는 그런 공간을 의미한다. 이렇게 1인 가구의 문제는 현실적이며 여기다 짝짓기의 어려움과 고독이란 문제들이 얽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1인 가구란 어서 빨리 극복해야 할 질병이거나 박복한 팔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여기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관계밀도와 자기밀도란 용어를 기용해 관계밀도 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를 자기 밀도 쪽으로 밀어 올려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고독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고, 홀로인 상황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홀로이되 고립되지 않으며 고독하되 은둔하지 않는 능력과 더불어 1인 가구 증가에 수반되는 고독사의 위협에 대비해 사회적, 국가적 연대와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해법이 나온다.
그에 대한 모델로 문제 중심 모델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구조 개선을 먼저 실시해서 다가올 변화를 미리 껴안는 스웨덴 모델이 제시된다. 한국에서 그런 시스템이 세워지길 기다리느니 스웨덴으로 이민 가는 게 빠를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도 얼핏 들지만. 독거노인과 고독사에 대한 협박을 과장된 불안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하고 홀로서기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현명하게 홀로설 수 있는 방법과 철학을 제시한 이 책에 박수를 보낸다.
*이글의 원문은 네이버 카페 '더라인 통번역 오픈케어'의 [박산호의 책과의 연애](http://cafe.naver.com/thelineopencare/4080)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