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세 칼럼] 결혼과 짝

    기자칼럼 / 오현세 / 2014-07-21 15: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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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남과 함께 살아야하는데 그 형태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 결혼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맺은 결혼이 깨지는 경우가 늘어간다니 어떤 이유에서일까 생각해 보았다.

    결혼한 상대방을 지칭하는 말로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식적인 단어는 스파우즈(spouse)다. 이 말의 어원인 라틴어 스폰수스(sponsus)를 보면 구속하다, 엄숙히 약속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때문에 라틴어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언어들의 배우자라는 단어들은 대개가 결혼 당사자 상호간에 어떤 형식으로든 권리와 의무를 진다는 법적 구속력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상적으로 쓰이는 베터하프(better-half)라는 말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서로 상대방을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이니 참으로 따듯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낫다’라는 말은 ‘보다 더 좋거나 앞서 있다’라는 의미가 전제되어야 하는 말이니 어느 한쪽이 낫다면 다른 한쪽은 기운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때문에 둘 사이가 평등관계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서로가 상대를 나보다 낫다고 여김으로서 평형을 이루고 있으나 자칫 아슬아슬해 보인다.

    한자로는 배우자(配偶者)라고 한다. 배(配)는 술항아리(酉)를 받들고 무릎을 굽힌 모양이니 혼례식에서 신랑 신부가 술잔을 들고 맞절하는 모습이다. 우(偶)에 보이는 우(禺)는 긴꼬리원숭이를 가리킨다. 긴꼬리원숭이는 옛 사람들이 흉내 잘 내는 동물로 꼽은 짐승이다. 흉내를 낸다는 것은 흉내의 대상이 마음에 들어서이니 서로 좋아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겠다. 그러니 배우자는 서로 흉내 내려는 두 사람이 술잔을 들고 혼례를 치룬 사이라는 의미다. 서로 닮고 싶다는 마음도 엿보이지만 서양과 마찬가지로 예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에 비해 반려자(伴侶者)는 의미가 좀 다르다. 반(伴)은 소머리를 가운데서 자른 모양이고 려(侶)는 등뼈가 이어진 모습이니 반려자라고 하면 등뼈처럼 붙어 있으면서 나와 너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반쪽을 말한다. 여기에는 제도나 예식의 개념 없이 다만 평등하면서도 긴밀한 관계만 보인다. 이처럼 남녀를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 본 흔적이 남존여비 사상이 대세였으리라 생각되는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놀랍다. 동남아권에서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동등하고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말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대개 친구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 베트남어의 반더이(Bạn đời), 인도네시아어의 까완히둡(kawan hidup) 등은 모두 삶을 함께 하는 친구라는 뜻이다. 모두 아름다운 말들이다. 다만 반려자에는 감성이 들어 있지 않고 친구는 언제든 틀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좀 꺼림칙하다.

    그런데 우리말 ‘짝’은 참으로 특이하다. 우리 선조들은 무언가를 만들 때 짝을 맞추는 방법으로 형태를 완성시켰다. 옛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끼리 짝을 맞추는 방법으로 널리 쓰인 끼움법이나 짜임기법을 보면 나무 양쪽의 모양이 같은 경우가 없다. 한쪽이 나오면 다른 한쪽은 들어가고 한쪽이 우로 기울면 다른 한쪽은 좌로 기울었다. 어느 쪽이 다른 한 쪽보다 더 낫다 못하다는 개념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볼트 너트의 경우도 짝이 맞아야 구실을 한다. 어느 한 쪽이 더 낫다는 개념이 없다. 더 낫다는 개념은 같은 것에만 적용된다. 더 단단한 볼트, 더 저렴한 볼트 등은 있을 수 있지만 너트보다 나은 볼트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애당초 두 개의 서로 다른 개체가 하나의 완성체를 만드는 그 각각을 ‘짝’으로 이름 지었다. 짝은 짝을 이룬 그 자체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그 짝을 이루는 각각도 가리킨다. 즉 개체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이렇게 쓰인 짝이 사람에 이르면 과연 흠 잡을 데 없는 말이 된다. 서로 누가 더 나을 것도 없고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완성체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유일한 존재니 이보다 더한 말이 어디 있겠나 싶다. 그래서 과문의 탓인지 모르나 이러한 개념으로 결혼 상대방을 지칭하는 경우는 우리 민족밖에 없는 듯하다. ‘짝’을 뜻한다고 생각되는 영어의 페어(pair)는 ‘동질, 동형, 평등’의 개념이 들어 있거나 단순히 수를 칭하는 단어로 쓰일 뿐이다. 우리말의 짝이 아니라 수저 한 벌에 쓰이는 ‘벌’이나 ‘쌍“에 어울리는 단어다.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자기 배우자를 페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일생 동안 함께 짝 지어 사는 경우 페어를 이룬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때는 동물이나 조류의 경우에 국한 해 사용한다. 흔히 쓰이는 커플(couple)도 프랑스어의 결혼한 쌍을 가리키는 쿠플(cople)에서 나온 말인데 이 쿠플의 원형인 라틴어의 코풀라(copula)에도 역시 ‘묶다’라는 구속 개념이 들어 있다.

    서구에서는 진작부터 문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상대방을 ‘짝’이 아니라 단순히 스파우즈나 배우자, 아니면 ‘베터 하프’나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스파우즈나 배우자는 법으로 맺어졌으니 법을 통해, 베터 하프는 애당초 한쪽이 기울었으니 언제든 갈라질 수 있겠다. 친구끼리 갈라지는 일이야 훨씬 더 하겠고. 그러나 ‘짝’은 가치와 법, 종류와 형태를 초월한, 어떠한 조건도 개입 할 수 없는 말이다. 유일한 조건이라면 서로 상대방에게 맞아야한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짝이 어찌 갈라질 수 있는가? 만일 결혼한 짝이 헤어짐에 임해 여전히 각각 쓰임새와 존재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 둘은 애당초 짝이 아니었음이다.

    결혼을 앞둔 남녀나 결혼을 한 남녀에게 부탁하고 싶다. 상대방을 배우자나 스파우즈, 베터하프나 친구가 아닌 ‘짝’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 서로가 서로에게 ‘짝’이기에 어긋남이 없는 지 심사숙고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짝이 갈라지면 집이 기울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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