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세 칼럼] 치유의 눈물로 한해를 마무리하십시오

    기자칼럼 / 오현세 / 2014-12-26 14: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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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세 객원기자
    ‘운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를 찾아보면 그 수효가 생각보다 많아 적잖이 놀라게 됩니다. 한자 자체가 본시 일자일의(一字一義)를 원칙으로 하는 탓에 어쩔 수 없었겠지 하다가도 동물마다 각각 그 울음소리를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그 노고가 대단하다 해야 할지 애처롭다 해야 할지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벌레가 울고 새가 울고 짐승이 우는 것을 대별하는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새 우는 소리만도 조(噪,喿), 명(鳴), 요(啼), 고(呱), 팔(哵), 앵(嚶), 소(嘯), 시(㖷)... 끝도 없는데다 꿩 우는 소리가 구(雊)인데 따로 암꿩 우는 소리는 객(咯)이라니 참새가 울면 참새우는 소리, 꿩이면 꿩 우는 소리, 암꿩이면 암꿩 우는 소리 하고 단어를 조합해 쓰는 한글이 얼마나 편한지 새삼 고마울 따름입니다.

    짐승울음도 이러할진대 사람의 울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흔히 쓰는 곡(哭)을 비롯해 의(偯), 필(嗶), 영(㘇) 등 수많은 글자가 전부 “울다”라는 뜻인데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며 우는 체(涕)에서 시작해 작은 소리로 울면 읍(泣), 훌쩍훌쩍 울면 희(唏), 흐느껴 울면 유(㗀), 목메어 울면 열(咽), 끅끅거리며 울면 련(慩)이요, 소리쳐 울면 제(嗁), 목 놓아 울면 호(號), 울부짖으면 후(吼)인데다 어린아이 우는 소리 또한 한쪽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니 사람의 눈물 흘리는 모습을 어쩌면 이리도 꼬치꼬치 나눠 놓았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이처럼 우는 모습이 제각각이니 의당 그 눈물의 의미도 각기 다를 것입니다. 티끌이 눈에 들어가 흘리는 눈물과 의인열사가 비분강개해 흘리는 눈물,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흘리는 눈물과 연인과 헤어지며 흘리는 눈물, 명곡이나 명화에 감동해 흘리는 눈물이 어찌 같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눈물을 각각 어떤 글자로 구별했을까요? 놀랍게도 한자에는 이들을 구별하는 글자가 없습니다. 눈물을 뜻하는 한자는 단 하나 루(淚) 뿐입니다. 체(涕)가 눈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루(淚)가 쓰이기 이전이고 지금은 콧물을 가리킵니다. 사(泗), 이(洟)도 콧물을 뜻합니다. 한자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언어에는 “눈물”이 눈에서 흐르는 액체인 “눈물”을 뜻하는 단어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순우리말에도 눈물은 “눈물“말고 다른 단어가 있나요? 한자에서 눈물 보다 콧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더 많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문자를 만든 주체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라면서 부모님한테 “사내애가 우냐?”라는 야단을 안 맞아 본 남자는 단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눈물은 여자의 전유물로 남자의 눈물이 허용되는 경우는 단 세 가지뿐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부모는 두 분이라 한날한시에 가시기 드므니 각각 운다고 치면 네 번 운다고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태어 날 때 무슨 생각이 있었을 리 없고, 나라 망하는 일도 평생에 겪을 일이 아니니 결국 남자는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외에는 눈물 흘릴 일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문자를 만드는 남자들의 머릿속에 눈물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리 없습니다. 그저 “눈에서 흘러내리는 액체”를 뜻하는 글자 하나면 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말고도 남자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단테는 친구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율리시즈도 동료들이 괴물 키클롭스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에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자가 울면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남자들 스스로도 눈물을 수치로 여깁니다. 거의 본능적입니다. 리어왕이 자신의 청을 거절하는 신들에게 외칩니다. “여인들의 무기인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소서. 남자의 두 뺨을 눈물로 더럽히지 않게 하소서”. 남자는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눈물이 성공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홍보 영상에서 보인 그의 눈물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눈물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물과 독물, 약물이 그것입니다. 눈에 티끌이 들어가 흘리는 눈물은 맹물입니다.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독물은 마음을 태우는 눈물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보내면 눈물이 납니다. 억울함을 풀 길이 없으면 눈물이 납니다. 이런 눈물은 염산보다 더 독해서 흘리는 사람의 마음을 새까맣게 태웁니다. 화산암처럼 구멍을 숭숭 뚫어 놓습니다. 그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이런 독물은 흘리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인간사가 어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염산 같은 눈물을 수없이 흘리며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런 마음을, 까맣게 타 황폐해진 마음을 치유하는 눈물이 약물입니다. 이런 눈물, 약물을 많이 흘려야 합니다.

    약물의 씨앗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 지 있습니다. 사소함을 사소하지 않게 보는 눈을 가진다면 언제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랑스러움에, 모든 아름다움에, 모든 감동에 약물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시도 때도 없이 웁니다. 티비를 보거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루에 연필 두 자루가 닳아 없어져야 작업한 것 같다”라는 헤밍웨이의 속삭임에 마음이 뭉클하고 무료시술을 받아 완쾌된 아이를 안고 감사의 눈물을 글썽거리는 몽골 엄마의 사진을 보면 내 눈에도 눈물이 고입니다. 금년에 중국의 구리와 바둑 10번 승부를 벌려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프로기사 이세돌의 아내가 ”남편이 지고 돌아왔을 때는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남편은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합니다. 그냥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동굴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 인터뷰 글을 읽으면 왈칵 목이 멥니다. 그러다 ”하나만 묻자했어. 우리 왜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하고 백지영이 ’총 맞은 것처럼”을 부르면 줄줄줄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이런 눈물이 흐르면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메말랐던 마음의 대지에 윤기가 흐르고 죽어 있던 풀들이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집니다.

    지하철에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 보면 처음에는 좀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약물이 까맣게 탄 마음을 어루만지고 뚫린 구멍들을 메워줄 때 느끼는 행복을 남의 시선과 바꾸다니 가당치 않지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 산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유가 여자는 마음 놓고 울고 싶을 때 울 어서라고 믿습니다. 남자들도 수많은 눈물의 씨앗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씨앗을 틔워 마음껏 눈물을 흘리기 바랍니다.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편견에서 벗어나 올 한해가 가기 전에, 마음을 태우는 독물을 참으로 많이도 흘린 올 한해를 보내기 전에 치유의 눈물, 약물을 철철 넘치게 흘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얀 마음이 되어 새해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웃음이 행복을 실은 파도라면 치유의 눈물은 해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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