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세 칼럼] 정월과 야누스

    기자칼럼 / 오현세 / 2015-01-05 17: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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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세 객원기자
    2014년에서 2015년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야누스를 생각했습니다.

    새해의 첫 달을 정월이라고 합니다. 한자어지요. 지금은 정월의 정자를 정(正)으로 쓰지만 갑골문의 원 자형을 보면 口 밑에 지(止)가 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口는 입이 아니라 성곽으로 “에울 위(口)”입니다. 지(止)는 엄지발가락과 뒤꿈치가 모두 땅에 닿아있는 발모양을 본뜬 글자로 “멈추다”라는 의미로 만든 글자입니다. 그러나 다른 글자와 합해지면 “발을 움직이는 동작, 즉 가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걸음 보(步)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보(步)의 윗부분은 왼발, 아래는 오른발입니다. 옛사람들도 발걸음을 뗄 때 요즘 군대처럼 첫 발을 왼발부터 시작했나 봅니다. 아무튼 정(正)은 다른 마을이나 성을 공격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 행위를 무도한 인간을 “바로잡는 행동”이라고 정당화 한데서 “바르다”라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정(正)이 “바르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게 되자 “정복하다”라는 의미의 글자로 정(正)자에 갈 행(行)을 더한 정(征)자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옛날에는 영토와 노예 획득을 위한 원정이 가장 큰 국가적 과업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해의 시작을 “이웃을 정복하러 가는 달”이라고 이름 지었나 봅니다.

    새해의 첫 달을 가리키는 순 한글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해오름달”이란 말이 보이지만 근자에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아름답지만 공감할만한 속뜻이 없는, 단순히 현상만을 그린 말이라 좀 미흡한 감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새해의 첫 달을 대개 정월이라고 부릅니다. 정월이란 말에서 이제 이웃을 공격한다는 의미는 더 이상 연상되지 않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기 위해 몸가짐, 마음가짐을 바르게 갖고자 다짐하는 “바른 달”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좋은 말이지요. 그러나 본래의 “나아간다”라는 의미가 살아 있어서인 지 앞만 바라본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때문에 제게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고려가 없는 듯 하여 섭섭한 느낌이 듭니다.

    영어의 정월은 재뉴어리(January)입니다. 로마의 신 야누스에서 따온 말입니다. 야누스라고 하면 흔히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인간의 이중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이는 야누스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야누스는 문을 뜻하는 라틴어 이아누아(ianua)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말 그대로 문과 여행길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아침 문을 열어 세상을 밝히고 그 문을 닫아 어둠이 오게 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한해를 여는 신으로 제격이지요. 그런데 유독 이 신만 다른 신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즉 머리의 앞, 뒤가 모두 얼굴인 것입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 중에 50개의 머리를 가진 헤카톤케이르라는 거신족이 있지만 머리의 앞뒤가 모두 얼굴인 신은 야누스 외에는 없는 듯합니다. 로마인들은 왜 이런 신을 만들었을까요? 바로 야누스가 두 개의 얼굴로 각각 과거와 미래를 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보는 신, 과거를 보는 신, 이렇게 두 신을 만들면 간단한 것을 왜 과거와 미래를 보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을, 그리스인들도 생각 못한, 머리 앞뒤에 얼굴이 달린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고 괴기한 신을 새삼스럽게 만들었을까요?

    로마인들은 알았습니다. 세상 만물에 한 면만 있는 존재란 있을 수 없음을, 안과 밖, 겉과 속이 따로 인 존재는 있을 수 없음을,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란 개념에도 양면성이 있음을, 과거와 미래는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영속적 존재임을 알았기에 하나의 머리에 두 얼굴을 가진 신 야누스를 만든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각각 분리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두운 과거는 버리고 희망 찬 미래로 나아가자” 따위의 구호가 그것입니다. 말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옷의 속은 버리고 겉만 입자”, 또는 “뒤가 없는 벽을 만들자.” 말이 되나요? 안과 밖은 함께 있어야만 존재로서의 조건이 성립합니다. 과거와 미래는 둘은 분리 될 수 없는 상호 의존적 존재입니다. 둘을 분리하는 순간 시간 자체가, 역사 자체가, 삶 자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개인적으로 야누스의 두 얼굴 중 미래를 향한 얼굴은 청맹과니, 눈뜬장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에 충실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미래와 과거를 구분 짓는 찰나일 뿐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은 항상 과거 뿐 입니다. 앞 얼굴 앞에 있던 미래는 나와 만나는 순간 머리 뒤편 얼굴 앞에 과거의 모습으로 자리 잡습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과거이고 이 과거가 쌓인 것이 삶이고 역사입니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보이는 것은 오직 과거 뿐 입니다. 그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더듬어 나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과거를 향해 눈을 감는다면 도대체 어디로 향하겠다는 것일까요?

    하루가 지나고 한해가 지나고 한 평생이 지나갑니다. 그 지나간 자국에 눈 감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사회가,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과거를 보는 눈을 감고 있어서입니다. 그런 개인, 그런 사회, 그런 국가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과거는 결코 버리거나 잊어야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과거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축복받은 자산입니다. 불행한 과거를 통해 미래의 불행을 방지하고 행복한 과거를 통해 미래의 행복을 재현할 수 있다면 어찌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2015년의 시작에 서서 다짐했습니다. 새해의 첫 달, 바름을 향해 나아가는 정월을 야누스의 얼굴로 맞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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