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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박근혜정부 탄생의 ‘숨은 공신’인데 왜 공직을 받거나 정치에 입문하지 않느냐?”
솔직히 그런 제안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일도 없거니와 설사 제안이 들어왔더라도 고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유인(自由人)으로 사는데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공직자가 아닌 탓에 때로는 격한 감정을 자유스럽게 토로할 수도 있었고, 공직자 신분으로는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위 높은 발언도 여과 없이 토해 냈었다.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생각했기에 거침없는 칼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원치 않는 공직자가 되고 말았다. 물론 직장이나 직위 등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른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의해 하루아침에 공직자 범주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김영란법’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각 언론사 기자와 피디, 방송국과 신문사 직원들은 내년 9월부터 모두 ‘공직자’가 된다. 실제 김영란법 속에서 규정한 공직자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에서 정하고 있는 ‘언론사’의 범주에 속하는 회사의 대표자 및 그 종사자를 말한다.
언론중재법이 정한 언론사는 ‘방송사업자, 신문사업자, 잡지 등 정기간행물사업자는 물론 뉴스통신사업자 및 인터넷신문사업자’ 등으로 무려 1만7000개가 넘는다. 이른바 조.중.동과 같은 영향력 있는 매체 종사자는 물론 미용잡지사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모두 공직자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즉 혐의만 있으면 이들 1만 7000개의 언론사에 대해 수사기관이 언제든 압수수색, 체포, 구속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이 통과됐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런 상황에서 언론인들이 과연 ‘나는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기자 등 언론 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직원은 당초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애초 김영란법의 대상은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초·중등교육법 등에 따른 공직자와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이 그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KBS와 EBS는 공직자윤리법에서 정한 공직유관단체인 반면 MBC나 SBS는 그렇지 않다는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사립학교 교원도 역시 같은 이유로 대상에서 빠졌다.
그런 문제제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논의과정이 너무 졸속이었다. 특히 언론인 적용대상 논의과정과 결과는 너무나 황당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상직 의원은 국회 정무위에서 지방 언론사의 부정한 청탁에 많이 시달린 듯 반감을 보이면서 모든 언론사를 포함시켜야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김용태 위원장이 “일부 악독한 언론을 가장한 사이비 언론 얘기를 하는 것”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박대동 의원도 “모든 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부 그런 언론이 있을 수 있다 얘기 아니냐”고 가세했다. 결국 이 의원이 “그렇다”며 한발 물러섰다.
정무위 회의에서 김영란법의 대상에 언론사를 넣을지 말지를 논의한 시간은 사실상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러 측면에서 이게 정무위 논의 결론이나 마찬가지다.
이 처럼 겨우 몇마디 주고받은 논의를 토대로 김영란법을 통과시킨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일부 악독한 언론을 가장한 사이비 언론’ 때문에 전체 언론을 매도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언론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상직 의원도 곧바로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한발 빼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모든 언론이 공직기관이 되고 언론종사들이 공직자가 되도록 한 황당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말았다.
지금 그 후유증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4일 성명서를 내고 "빠른 시일 내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대한변협은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규율대상을 자의적으로 선택해 '민간 언론'을 법적용대상에 포함시켰다"며 "이는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법안을 졸속처리한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입법보완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입법 미비점이나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를 듣고 준비기간 동안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도 김영란법이 과잉금지의 원칙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후속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법사위원장인 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은 "가능하면 빨리 보완을 하는 작업을 국회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국회가 시간에 쫓겨 김영란법을 졸속처리 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나저나 언론인의 긍지와 자부심 하나로 자유인처럼 살아왔던 수많은 언론종사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직자 신분으로 돌변한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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