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탈당 독촉장’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5-06-24 16:29:17
    • 카카오톡 보내기
    편집국장 고하승


    지난 23일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 정치평론가와 사적으로 긴히 통화할 일이 있었다.

    용건을 마치기 직전 그가 뜬금없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종걸 원내대표와 김한길 전 공동대표 등 당내 비노계 인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범친노계인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한 것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문 대표가 끝내 ‘최재성 카드’를 강행한 것은 비노계에게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당을 떠나려면 빨리 떠나라는 일종의 ‘탈당 독촉장’같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그에게 너무 가볍게 응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름 정치평론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가 언론사 편집국장의 견해를 묻는다는 것은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건질 것이 있지 않겠느냐하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문 대표의 ‘최재성 카드는 탈당 독촉장’이라는 필자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심야 최고위원회의 때 ‘최재성 카드’에 대해 "당을 깨자는 것이냐"며 강력 반대했음에도 문 대표가 밀어붙인 것은 “그래, 당을 깨겠다”는 답변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문 대표는 지난 4䞙재·보궐선거 전패(全敗) 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면서 이른바 ‘혁신위원회’라는 것을 구성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기득권을 내려놓기는커녕 되레 친노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가 최재성 카드를 빼든 것 역시 친노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실제 사무총장은 내년 4월 총선 공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마음먹기에 따라 비노계 인사들을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으로 공천에서 탈락시킬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은 혁신위원회에 覈% 물갈이’를 주장한 조국 교수가 포함됐을 때부터 나타났으며,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발표한 1차 혁신안에 이른바 ‘교체지수’라는 것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호남 물갈이’를 노골화 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혁신위의 교체지수란 게 무엇인가.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당과 국민 삶의 기여도에 대한 정성·정량 평가를 하고, 이런 평가를 토대로 당 지지도와 선출직 공직자의 지지도 등을 고려해 교체지수를 산정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 지지도보다 국회의원의 지지도가 낮으면 공천에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체지수는 현재의 여당이 공천 작업을 하면서 다른 계파를 쳐내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돼 왔던 방식이다. 지난 2000년과 2012년에 이런 방식으로 영남권 거물들을 ‘공천학살’했다.

    그 방식이 그대로 야당에 적용된다면 호남권 거물급 인사들이 ‘공천학살’당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문 대표가 최재성 카드를 밀어붙인 것은 이런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겠다는 뜻일 게다.

    즉 군말 말고 당에 남아 있든지 아니면, 어차피 공천을 받지 못할 사람들은 자진해서 빨리 당을 떠나라는 최후의 통첩장이나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탈당을 저울질하는 비노계에게 문 대표가 알아서 ‘탈당명분’을 제공해 준 셈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24일 트위터에 "분당의 빌미를 주지 않는 인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실망을 안겼다"고 비난한 것 역시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실제 이 같은 내홍이 최근의 '천정배 신당론'과 맞물리면서 당내 신당 원심력이 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신당 창당이 추석 연휴를 앞둔 오는 9월 중순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아마도 광주와 전남에서 치러지는 10월 기초단체장 재보선을 염두에 둔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친노 세력은 그런 움직임에 크게 무게를 두는 것 같지는 않다. 탈당 독촉장을 받아든 사람들, 어차피 물갈이가 돼야 할 사람들이 무슨 할 수 있겠느냐는 태도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중심에 국민적 지지를 받는 사람이 눈에 뜨지 않는다. 천정배 박주선 의원이나 이철 전 의원 등 ‘도토리’정치인들 가지고 아무리 지역 정당이라고는 하지만 호남에서 제 1야당에 버금가는 지지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겠다. 전남 강진 토담집에 은거하고 있는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가 힘을 보탠다면 성공할지도...

    그러나 손 전 대표에게 그런 일을 기대하기엔 오늘날의 정치가 너무나 추(醜)하다는 생각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하승 고하승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