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무슨 잘못을 했나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5-06-25 14: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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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하승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미 박 대통령께 “정부가 합당한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국회법 개정안이 발목 잡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되시면, 미래 정부를 위해서라도 거부권을 행사하시라”고 권했던 필자로서는 그 같은 결단이 반갑기 그지없다.

    앞서 필자는 지난 16일 <與野, 국회법 중재안 합의? 장난하나?>라는 제하(題下)의 칼럼을 통해 ‘입법독재’를 꿈꾸는 여야 정치인들을 강력 비판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거부권행사를 권했었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자칫 박 대통령이 정쟁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이건 ‘원칙’의 문제라는 게 당시 필자의 판단이었다.

    필자가 그런 판단을 내린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난 15일 시행령 수정권한을 강화해 위헌논란이 일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정의화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으로 수정하자는 데 대해 여야가 극적(?)인 합의를 이루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필자는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위헌논란을 일시에 잠재울만한 대단한 문구 수정이라도 있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고작 국회법 개정안의 문구 중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를 '요청할 수 있다'로 바꾼 게 전부였다. 다시 말해 ‘요구(要求)’를 ‘요청(要請)’으로 바꿨을 뿐이다. 즉 ‘구(求)’를 ‘청(請)’으로 달랑 한글자만 바꿨다는 말이다.

    그 한 글자 바꾼 것으로 위헌성이 전부 해소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쩌면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며 축배를 든 정의화 국회의장은 물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나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위헌성이 모두 해소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요구’나 ‘요청’이나 의미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다 큰 어른들이 그걸 몰랐을 리 없지 않는가.

    박 대통령도 이날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를 설명하는 가운데 “요구와 요청은 국회법 등에서 같은 내용으로 혼용돼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이,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연계해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됐다”며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소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여당의 원내 사령탑인 유승민 원내대표의 책임이 크다.

    우선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법안을 연계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충분한 논의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채 ‘덥석’받아들인 게 잘못이다.

    어쩌면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도 ‘입법독재’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 갔을지 모른다. 여야가 손을 맞잡고 정부를 무력화 시켜 국회, 즉 국회의원들의 힘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위헌성이 다분한 국회법 개정안을 아무 관련 없는 공무원연금법 처리에 끼워 놓자는 야당과 합의할 까닭이 없지 않는가.

    문제는 그의 잘못이 그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일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시사했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공무원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 공무원연금과 관계없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문제를 연계시켜, 위헌 논란이 있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는데 이것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서 걱정이 크다”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당의 원내사령탑인 유승민 원내대표는 개정안을 수정하는 협상과정에서 위헌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옳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여러 문장 가운데 고작 한 글자, 그것도 의미상 별반 차이 없는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는 데 대해 합의해 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이 “이것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여야가 합의했다는 반증”이라고 쏘아붙였겠는가.

    사실 필자는 그동안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의정활동을 적극 지지해 왔으며, 때로는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모든 애정을 접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현명하게 처신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런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로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유 원내대표가 원내 사령탑으로 어떻게 처리하는지 국민과 함께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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