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고하승


작년 서울언론인클럽의 '앵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한국언론인연합회의 ‘참언론인대상’앵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장성민 전 의원으로부터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추석 연휴 전날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그는 느닷없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부산이 아니라 광주에서 출마한다면 당선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 어쩌면 물어보나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은 질문이어서 필자는 그냥 ‘허허’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제1야당 심장부인 광주에서 제1야당의 대표가 출마한다는 데 누가 그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느냐하는 막연한 생각이 앞섰던 듯싶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현재 여야의 강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내년 4월 총선에서 ‘전초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 대표를 향한 ‘부산 영도 출마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영도구는 새누리당 김 대표의 지역구로 김 대표는 이미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그런데 문 대표가 "어디든 마다하지 않겠다"며 부산 영도구에도 출마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여기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부산이라면 그래도 여당의 ‘전통 텃밭’인데 문 대표가 무엇을 믿고 여당 대표와 맞붙겠다는 것인지, 혹시 객기는 아닐까?

그러나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의 발언을 ‘객기’로 치부하는 것은 좀 그렇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부산 영도 출마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발언을 한 것일까?

혹시 광주 출마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고육책은 아닐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지금 신당창당을 추진 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박주선 의원은 문재인 대표에게 “광주에서 한판 붙자”며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호남의 민심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문 대표는 신당 창당이 호남민심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누구의 말이 맞는지 선거에 승부를 내자는 것이다.

실제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박 의원은 "(새정치연합은) 저에게 호남 민심을 왜곡한다고 하는데, 문 대표가 광주에 내려와 출마했으면 좋겠다"며 "저와 함께 출마해 민심을 왜곡한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심판받자"고 제안했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 역시 “문 대표가 새정치연합에 대한 호남 민심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20대 총선에서 광주에 출마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내년 총선에서 광주에서 출마한다면 어디든지 붙어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호남, 그 중에서도 특히 광주는 ‘제1야당의 심장부’로 불렸었는데 그 지역 무소속 의원들이 제1야당 대표에게 “오너라! 맞붙자!”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광주민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일 거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은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특히 새정치연합의 지지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 광주-전라 지역에서도 새누리당의 승리를 예상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내년 4월 13일로 예정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2%가 '새누리당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답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9.4%에 불과했다. '기타 혹은 잘 모름'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9.9%였다.

충격적인 사실은 새정치연합의 텃밭으로 분류되는 호남 지역에서도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새누리당이 승리할 것으로 내다본 반면 새정치연합의 승리를 예상한 응답은 고작 19.9%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전화 50%씩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4.9%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표가 ‘야당 텃밭’이라는 점만 믿고 무턱대고 광주에서 출마했다가는 큰코다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잇따른 광주출마 제안을 마냥 외면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고육책으로 꺼내든 카드가 바로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 출마론’일 것이다.

어쩌면 문 대표는 이미 민심이 돌아선 광주에서 천정배 의원이나 박주선 의원과 맞붙는 것보다는 차라리 김무성 대표와 정면으로 맞붙는 게 더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야당 텃밭 격인 광주출마를 어떻게든 피하고 보자는 야당 대표나 그런 야당 대표로부터 자신의 지역구에서 도전장을 받아야하는 여당 대표나 모두가 안쓰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