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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한 주간 국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용어이기도 하다.
실제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 도입여부를 놓고 여야는 물론 같은 정당 내에서도 계파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리얼미터가 지난 30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찬성한다’는 의견이 48.8%, ‘반대 한다’는 의견이 27.0%, ‘잘 모름’은 24.2%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응답률 5.1%)으로 유·무선 전화 각 5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1%포인트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황당한 제도에 찬성 의견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잘 못된 용어 탓이다. 물론 이 용어를 만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입장에서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의도한 것’일 게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꼼수’일뿐 진실이 아니다.
‘안심’이라는 긍정적 단어에 ‘국민공천’이라는 긍정적인 단어까지 더해졌으니 찬성 의견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확한 용어는 ‘휴대폰 여론조사제’다.
즉 당원이나 일반국민들이 현장에서 투표로 정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휴대폰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만 실시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휴대폰 여론조사제’에 대해서 찬반 의견을 묻는 게 맞다. 만일 그렇게 물었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이번에 실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와는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우선 당장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인 '안심번호'가 개인정보 침해 소지에 휩싸이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합의한 방식은 이동통신사업자로부터 전달받은 안심번호를 기반으로 중앙선관위가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형태다. 이통사로부터 성별·연령·지역이 고르게 분포된 유권자 표본을 각각 안심번호를 부여한 형태로 각 정당이 넘겨받아 그를 대상으로 정당이 여론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통사가 고객의 성별, 연령, 지역 등 개인정보를 선거인단을 꾸리는 정보로 활용하는 과정 자체가 위법이다. 고객들이 이동통신사에 자신의 정보를 제공할 때는 특정 목적(통신서비스 제공)으로 용처를 제한해 정보의 수집·활용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과연 휴대폰 소지자들은 자신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외부기관에 넘겨지는 것을 찬성할까?
또 확실한 방안인 ‘현장투표’대신에 ‘역선택’가능성과 과학적으로 오차범위라는 것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만 가지고 정당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면 과연 찬성 응답자가 얼마나 될까?
더구나 그 과정에 각 정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의견이 배제된다면, 당원들은 동의할 수 있을까?
아마도 반대 의견이 더 많게 나올 것이다. 여론조사에는 이런 ‘함정’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즉 ‘휴대폰 여론조사제’라는 정확한 용어 대신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라는 긍정적 용어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찬성 의견이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게 바로 ‘꼼수’라는 것이다.
사실상 ‘국민’은 없고, ‘휴대폰’만 있는데도 그럴 듯하게 포장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라는 기발한 용어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문제는 김무성 대표가 이런 황당한 용어에 동의하고, 뜻을 같이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나중에 새누리당이 이를 반대할 경우 ‘휴대폰 여론조사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반대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이 용어를 사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당 대표라면 적어도 상대가 어떤 의도를 지니고 그런 황당한 용어를 선택했는지 한번쯤은 생각했어야 옳았다는 판단이다.
만일 적장(敵將) 문재인 대표의 의도를 몰랐다면 그것은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동의했다면 그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제부터라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라는 거짓 용어 대신에 분명하고도 정확한 용어인 ‘휴대폰 여론조사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 사실을 국민에게 진실 되게 알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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