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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블랙홀’발언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개헌론이 뜻밖에도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의 입을 통해 다시 불거지는 양상이다.
실제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개헌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4일 한 행사장에서 “최근 20년 이상이 5년 단임 정부”라며 “그러다 보니 정책 일관성·지속성을 유지하기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정책의 일관성·지속성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개헌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가세했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제 수명을 다한 것 아니냐"며 "정치가 일관성을 가질 수 있고 극한 대립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원집정부제를 찬성한다"고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정가 일각에서는 친박계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외치를 담당하는 대통령이 되고 친박계가 내치를 담당하는 총리가 되는 '이원집정부제'를 구상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홍 의원의 이원집정부제 개헌 발언은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았다.
실제 홍 의원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대통령을 맡고, 친박 인사가 총리가 되는 이원집정부제 구성에 대해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당내 비박계는 물론 야당에서도 들고 일어났다.
먼저 대표적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개헌발언에 대해 “공천권을 놓고 김무성 대표를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정치 지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것”이라며 “개헌론을 고리로 해서 기존 정치 지형을 언제든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정치적 무력시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MB(이명박) 재임 당시에는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대표적 개헌론자이다. 더구나 그의 개헌 방향은 ‘분권형’이다.
실제 그는 지난 2009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처음 활동해보니 여야 갈등이 빚는 폐해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며 “누구보다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도 자기 임기를 채우는 것보다 권력구조 개편 등을 통해 한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욱 시급하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초 개헌에 소극적이었던 것처럼 개헌을 논의하더라도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극심한 정쟁을 겪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MB가 권력구조에 대한 구상을 명쾌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정권 2인자’로 불리던 이재오 의원이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를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김용태 의원의 이런 발언은 이원집정부제 개헌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김무성 대표를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논의를 차단하고 나섰지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를 손질해야 한다며 개헌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당시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공개 요구한 전병헌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임기 중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개헌논의를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국회에 개헌특위를 만들어달라고 해야 한다”며 특위 구성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었다.
또 여야 의원들이 두루 포함된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의 야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은 “(모임에선)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편하자고 의견이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었다. 대통령은 통일·외교·국방 등을 책임지고, 총리는 내정에 관한 행정권을 맡는 등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박근혜 정권의 장기집권 음모’라고 비판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하다.
물론 지금은 개헌론을 언급할 때가 아니다. 최경환 부총리와 홍문종 의원의 개헌발언은 조금 성급한 측면이 있다. 이 시점에 개헌을 논의했다가는 그것이 ‘블랙홀’이 돼 박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개헌이 논의된다면, 그리고 그 방향이 분권형(이원집정부제)이라면, 여당 내 비박계와 야당은 그것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대들이 그동안 해 왔던 주장을 스스로 부인 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총선 이후 본격적인 개헌논의가 이뤄지기는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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