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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그렇게 어렵나?”
필자는 최근 전남 강진군 만덕산 자락에 위치한 토담집을 방문한 일이 있다.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순박한 시골 농부의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참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는 방문객을 위해 소담한 술상을 직접 차리셨다. 곶감과 한라봉 몇 개에 막걸리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술상이었다. 그렇게 몇 잔의 술잔이 오갔다.
그 자리에서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107석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것을 두고 짧은 대화가 오갔다. 손 전 대표는 지나가는 말투로 ‘툭’던지시듯 “여긴 텔레비전도 없고 신문도 안 와서…그 정도는 되겠지?”라고 혼잣말처럼 질문하셨다. 물론 답변을 기대하신 것 같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냥 못들은 척 하고 있으면 될 일인데, 무슨 심술이라도 부리 듯 곧이곧대로 “제가 보기엔 100석도 안될 겁니다. 90석 안팎입니다.”라고 답변해 버렸다.
그 때 손 전 대표가 하신 말씀이 “어허, 그렇게 어렵나?”였다. 그리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7일 남양주에서 어떤 내용으로 특강하실 거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셨다. 아마도 상당히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손 전 대표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호남민심에 대해서도 물으셨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가 볼 때 호남에선 국민의당이 1당이 될 겁니다. 광주는 압도적 우세이고, 전남과 전북도 6대4 정도로 국민의당이 이길 거 같습니다.”
이 같은 전망 역시 의외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았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김성식 국민의당 최고위원을 거론하자, 손 전 대표는 “어렵다던데...어떠냐”고 걱정스럽게 묻기도 하셨다.
비록 몸은 정계를 떠나 깊은 산중 흙집에 머물고 있지만, 마음 한 곳에선 여전히 정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7일 강연에서 자신이 전남 강진을 칩거지로 선택한 이유와 자신이 보는 다산 정약용의 삶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2014년 7월30일 수원 팔달선거에서 패배하고 '국민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니 정치를 떠나겠다'고 생각해 엿새만인 8월6일 강진으로 내려갔다.
그 이유에 대해 손 전 대표는 “시대를 초월해 큰 울림이 되는 다산이 유배생활을 통해서 실학체계를 확립했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산은 강진의 주막집에서 4년을 살면서 그곳에 ‘사의제(四宜齊)’라는 이름을 써 붙였다고 한다. 사의(四宜)란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며 말수를 줄이고 행동을 신중하게 하라는 뜻이라는 게 손 전 대표의 설명이다.
이어 "(나는) 매일 사의제를 생각하며 면도를 한다"며 "다산 초당에 가면 저 역시도 마음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다산의 사의제를 생각하면서, 어려운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탐관오리를 척결하려던 마음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전남 강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정치현실을 우려했던 것은 바로 그런 다산 정약용의 ‘백성 사랑’정신이 몸에 밴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그런 순수한 마음을 헤아려주기는커녕 오로지 자당 후보의 승리를 위해 선거에 이용하려고만 든다.
실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도 손 전 대표에게 선거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김 대표는 이날 경기 남양주시청에서 열린 남양주갑,을,병 후보 공동 공약발표에 참석, "정계를 은퇴하고 전남 강진에 내려가 있어서 이런 부탁을 하기가 대단히 송구스럽다"면서도 “전국 후보들이 손학규 전 대표의 후원을 원하고 있다. 남은 기간 더민주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안철수 공동대표도 지난 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손 전 대표에 대해 "당에 꼭 필요한 분이고 지향점이 같다"며 "(영입을 위해)계속 노력하겠다"고 '공개구애'한 바 있다.
이 같은 지원요청에 손 전 대표는 "지금 모든 상황을 잘 모르니까 좀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아마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야권의 상황을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그의 순수한 마음 탓일 게다. 하지만 손 전 대표는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다. 선거에서 어려움에 처한 야권이 문제가 아니라 곤궁한 국민의 삶이 더 큰 문제다. 따라서 손 전 대표는 지금 ‘야권구원투수’로 나서기보다는 총선 이후 ‘국민승리투수’로 나서여 한다는 생각이다. 그가 약속한 ‘저녁이 있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강진에 조금 더 머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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