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여론조사 경선, 폐기하라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6-04-11 14: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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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하승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141개 선거구에서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해 후보를 정했다. 그동안 변수(變數)에 불과하던 여론조사가 이번 총선에서 선거판의 상수(常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두 명 가운데 한명은 최근 발표되고 있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여론조사가 남발되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우선 국민일보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5일과 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응답률은 4.8%ㆍ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p) 결과를 보자.

    총선 여론조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전혀 신뢰안함 16.1%ㆍ신뢰하지 않는 편 31.6%)이 47.7%로 ‘신뢰한다’는 의견(매우 신뢰 5.9%ㆍ신뢰하는 편 37.4%) 43.3%보다 4.4%p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9.0%다.

    특히 지역별로 보면, 이번 총선의 최대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불신 50.8%vs신뢰 40.5%)에서 ‘불신’ 응답이 많았다.

    어디 그 뿐인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9일까지 4.13총선과 관련된 여론조사 불법행위를 모두 84건이나 적발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24건)보다 무려 3.5배 증가한 것이다. 특히 84건 중 고발(14건)과 수사 의뢰(4건)가 21.5%에 이를 정도로 악성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일부지역에선 이른바 ‘역선택’을 한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역선택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현장에 참여한 선거인단 득표수에서는 앞섰으나 여론조사 환산 득표수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밀리며 패하고 말았다. 당시는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야당이 맥을 못 추던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여론조사가 사실상 다음 대통령을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당시 무수히 많은 의혹에 휩싸였던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배경에는 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미국 성인 10명 중 7명은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에 비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를 향한 비호감은 모든 성별과 연령대, 인종, 정치성향을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AP통신과 여론조사기관 GfK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4일까지 미국 성인 1천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7일(현지시간)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9%가 트럼프에 대해 '매우 비호감'(56%)이거나 '다소 비호감'(13%)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특히 남성과 여성, 젊은 층과 고령층, 보수·중도·진보, 백인·히스패닉·흑인 등 모든 계층에서 과반수가 트럼프를 싫어했다.

    심지어 트럼프가 경선에서 크게 승리한 남부 지역에서도 70% 가까이가 비호감을 표출했다.

    그런데도 그가 공화당 후보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믿을 수도 없고, 국민이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선택을 통해 민심을 왜곡시킬 수 있는 게 여론조사인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여론조사를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당내경선에 전격 도입한 게 바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물론 여론조사가 선거에 도입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던 1996년 15대 총선부터다. 당시 청와대 정무라인이 공천과 선거 판세에 여론조사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비밀이 부쳐졌고, 그것이 판세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 단일화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일 당선시킨 것을 계기로 여론조사 경선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것을 김무성 대표가 아무런 생각 없이 ‘상향식 공천’이라는 명분 아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 종로의 경우만 해도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가 박진 후보를 누르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더민주 정세균 후보와의 일대일 대결에선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다시는 이런 엉터리 같은 여론조사 경선이 실시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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