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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참패’라는 아픔을 맛보았다.
실제 더민주 후보들은 광주에선 8곳 모두 전멸했고, 전남은 10곳 가운데 고작 한 곳에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전북에서도 10곳 가운데 2개 선거구에서 승리한 게 전부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친노 진영에서는 ‘셀프공천’이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야권 원로로 대표적 친노 인사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11일 "당 대표의 비례대표 기호 2번 셀프공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의정관에서 열린 20대국회 초선의원 의정연찬회 초청강연에서 "선거 돌입 전에 호남에서 당세를 만회해가던 더민주가 셀프공천 하나로 인기가 폭락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역시 당내 친노계로 분류되는 강기정 의원도 "이번 선거는 셀프공천으로 망한 선거"라며 "호남 전멸을 문재인 친노패권 또는 반문재인 정서, 호남 홀대론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셀프공천 문제가 가장 컸는데 김종인 대표는 반성은 하지 않고 전국 1당이 되니까 호남 패배는 책임 없다는 태도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김종인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친노 중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친문 인사들의 김 대표를 향한 공세는 더욱 거세다.
정청래 의원은 최근 트위터에 올린 ‘호남은 왜 더민주를 버렸을까’라는 글을 통해 “반문재인 정서는 호남민심 이반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비례대표 공천장사 운운으로 김대중과 광주정신에 대한 모욕이 호남의 역린을 건든 것”이라고 김종인 대표에게 화살을 돌렸다.
친노의 지지를 받아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추미애 의원도 "셀프 공천과 비례대표 파동으로 지지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고 가세했다.
통상 더민주 ‘호남참패’원인을 ‘반(反) 문재인 정서’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물론 셀프공천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결코 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호남민심 이반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호남민심이 국민의당으로 돌아선 것은 ‘반문정서’때문이다.
만일 ‘셀프공천’이 원인이라면, 그 영향이 다른 지역에도 미쳤을 것이고, 결국 더민주가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유독 야당 전통 텃밭인 호남에서 완패했다면, 분명히 거기엔 특별한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특별한 원인이 ‘반문정서’라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10일 1박 2일 일정으로 전북을 찾은 것은 호남에 만연한 반문정서를 달래기 위한 행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 그는 지난 9일 전주의 한 요양원에 있는 천이두 전 원광대 교수를 병문안하는 것으로 총선 후 두 번째 호남방문을 시작했다. 이날 만찬이 끝난 뒤에는 전주 시내 ‘막걸리 골목’에서 시민들과 번개모임을 열었고 전주 한옥 마을에서 숙박을 하기도 했다.
그 다음 날에는 군산·익산 일대를 돌았다. 또 5.18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칩거 중인 상황에서도 이처럼 특별히 호남 나들이를 빈번하게 하는 이유는 ‘반문정서’를 희석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왜 친노 진영은 ‘셀프공천’을 탓하는 것일까?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호남참패 책임론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문 전 대표는 총선 과정에서 '광주 시민들께 드리는 글'을 통해 호남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끝내 거두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차기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만일 호남참패가 ‘반문정서’때문이라면 문 전 대표는 이 약속대로 차기대선 불출마를 선언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셀프공천’때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호남패배의 책임이 문 전 대표에게 있는 게 아니라 김종인 대표에게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호남참패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친노 진영에서 의도적으로 ‘셀프공천’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문재인 전 대표는 단 한 번도 선거 패배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실제 문 전 대표는 작년 2.8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했다. 4.29 재보궐에선 선거구 4곳 모두 패배했고, 같은 해 10.28 재보선에선 24곳의 선거구 중 2곳에서만 당선인을 배출하는 참패를 당했었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책임을 져야한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으나 그는 끝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일 듯 싶다.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7.30 재보선 패배의 과도한 책임을 지고 전남강진으로 내려간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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