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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정의화 국회의장과 만나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손 전 대표 자신이 “새판을 짜는 데 앞장서 나가겠다”며 사실상 정계복귀를 선언한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제3세력을 규합하겠다는 계획을 지닌 정 의장도 “창당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며 ‘새판짜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물론 두 정치인들이 이에 대해 사전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당초 그 자리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조우(遭遇)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현재의 어지러운 정치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전당대회를 앞둔 새누리당은 지금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으로 대혼란에 빠졌다. 소설쯤으로 치부됐던 분당(分黨)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정도로 심각하다.
친박계는 비록 몸집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내부 총질’하는 인사들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이 확고해 보인다.
실제 김태흠 의원은 “‘스님이 절이 싫으면 떠난다’는 말 있는데 정당이라는 것은 잠시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념이나 목표의 방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 그런(분당)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비박계 역시 친박 패권주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결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친박과 비박의 '한 지붕 두 가족' 동거가 점점 힘들어지는 분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의장은 퇴임 후 ‘새한국 비전’이란 싱크탱크를 만들어 중도 정치세력을 망라한 제3세력을 규합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정 의장은 18일에도 “국회의원은 안 해도 정치는 계속 하겠다”며, “올해 10월까지 결사체가 정치그룹이 될지 정당이 될지 등을 고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의장이 추진하고 있는 새한국의 비전에는 새누리당 정병국 정두언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진영 의원,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 등이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여당인 새누리당 인사들뿐만 아니라 더민주와 국민의당 야당 중도성향의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야권통합 차원이 아니라 여야의 벽을 넘어선 ‘중도대통합’이라는 거대한 정치권 새판짜기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다만 이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장벽은 ‘대선주자 부재(不在)’다. 정당의 목적은 ‘집권’이다. 집권을 하려면 범국민적 지지를 받는 대선주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새한국비전’엔 그런 주자가 없다. 따라서 이들이 10월 경 ‘제4당’의 창당 깃발을 올리더라도 세력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손학규 전 대표를 영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손 전 대표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국민의당 모두 ‘러브콜’을 보낼 정도로 상품가치가 있는 대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참여한다면 정당을 창당하는 일이 그만큼 쉬워지는 셈이다.
사실 손 전 대표는 친박패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이나 ‘친노 패권정당’으로 낙인 찍힌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에 갈 이유가 없다. ‘호남자민련’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는 안철수의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손 전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처럼 호남의 지지 없는 후보가 대권에서 승리할 수 없고, 안철수 대표처럼 호남의 지지만으로도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 같다. 손 전 대표의 최측근인 송태호 동아시아미래재단 이사장도 “(정계에 복귀하더라도) 어느 정당에 들어가 둥지를 트는 형태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손 전대표의 ‘새판짜기’구상은 어떤 것일까?
혹시 친박-친노 패권주의에 맞서는 ‘중도대통합’을 구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념논쟁에 함몰된 기존의 구태정당정치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그가 앞장서겠다는 ‘새판짜기’의 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정의화 의장의 구상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중도대통합’을 통해 국민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는 데 동의한다면 두 사람이 손을 잡을 수도 있을 같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손 전 대표는 18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관계자, 지지자 300여 명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광주와 전남 강진, 서울, 충청, 속초에서 온 분들(지지자)이 새판을 시작하고자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 (제가) 새판을 짜는 데 앞장서 나가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자 지지자들은 “손학규 대통령”을 연호했다. 정계복귀를 공식선언하지는 않았으나 정계 복귀는 이미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이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어떤 형태로 ‘새판짜기’를 하는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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