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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문제를 언급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힌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국민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 강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개헌의 핵심사안인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또한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서도 단지,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개편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따라서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한다는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기보다는 ‘국민의사 반영’이라는 명분으로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3석 의석 총 300석의 정원을 유지한 채 비례대표 의원을 늘릴 경우 의석수가 줄어드는 지역구 의원의 반발이 불 보듯 빤하다. 이를 무마시키려면 의석수를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민은 현재 300명으로 구성된 국회의원규모도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국민 74.9%가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현행 국회의원 소선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는 것에 대해선 일반국민 71.1%가 찬성했다.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은 비례대표 확대가 아니라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이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어야 옳았다.
특히 양당패권체제에서 지금은 다당제가 이뤄진 만큼, 다당제의 안착을 위해서라도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제왕적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마당이다.
실제 S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달 27일과 28일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헌 시 가장 선호하는 정부 형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혼합형 정부 형태를 지지한다는 답변이 무려 49%에 달했다. 지난 7월 같은 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역시 비슷했다. 국민들이 혼합형 정부 형태에 대한 지지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혼합형 정부 형태란,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대통령과 의회에서 선출되는 총리에게 국정운영 집행권이 분산되는 체제다. 일반적으로 이원정부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이 방향을 개헌의 방향으로 제시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5년 단임의 현행 제왕적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전환하는 ‘황제대통령제’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언급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제왕적대통령제를 황제적대통령제로 바꾸고, 국회의원 수를 늘리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도 문제지만,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아예 이런 개헌논의조차 못하게 막고 있으니 문제가 더 크다.
그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다.
실제 홍 대표는 "개헌을 지방선거에 덧붙여 투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개헌 연기론'을 펼치는가하면,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한다는 국민의당 등 다른 야당의 요구에 대해선 “소선거구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민주적인 제도’라며 단식투쟁을 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라며 반대했다. DJ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패권양당제의 향수에 젖어 양당제로 회귀하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특히 홍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한국당 후보로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과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주장까지 했었던 당사자라는 점에서 국민의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오죽하면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개헌은 국민 78%, 국회의원 88%가 동의한다. 시대정신이나 다름없는 개헌 논의에 홍 대표 혼자만 반대하며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겠는가.
부디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는 시대정신인 분권형 개헌과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임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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