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의 방향은 7공화국이어야 한다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8-01-11 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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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하승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 추진의지를 피력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비록 '개인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자신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점은 매우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특히 3월 중 국회에 개헌안이 발의되지 않으면 정부가 그보다 먼저 개헌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각 정당의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공약했다. 당시 개헌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그도 “이게 나라냐”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제왕적대통령제를 종식시키자는 성난 촛불민심에 굴복해 결국 개헌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추진되는 개헌의 방향은 당연히 ‘제왕적대통령제의 종식’이어야 한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 참석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이 없는 개헌은 하나마나한 개헌"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게 ‘적폐청산’이다. 그런데 그 ‘적폐’의 뿌리가 바로 ‘제왕적대통령’이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나누지 않고서는 만연한 적폐를 청산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개혁, 적폐청산의 핵심은 바로 ‘제왕적대통령제 종식’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오히려 대통령의 임기를 3년 더 늘리는 것이 가능한 ‘대통령중심 4년중임제’를 선호하고 있으니 문제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제왕적대통령’이라면 4년 중임제의 대통령은 ‘황제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개헌은 하나마나한 개헌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改惡)’인 까닭에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개헌을 야당과 국민이 순순히 동의할 리 만무하다. 문 대통령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전날 개헌의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와 관련 "4년 중임제가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면서 "이 부분은 합의가 안 되면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개헌의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을 제외하고 대통령이 주도해 기본권, 지방분권 등에 대한 개헌만이라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의지는 손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기본권을 강화한다고 해서 대통령의 권한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고, 지방분권 강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기본권 강화나 지방분권은 개헌 없이 당장 법률 또는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특히 지방분권의 경우 지방세와 국세 비율 조정을 통해 지방재정 자주권을 강화시킬 수 있으며, 국가사무의 대폭적인 지방 이양으로 지방분권은 실현될 수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의 개헌은 단순히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 ‘알맹이’를 뺀 ‘쭉정이’ 개헌을 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청와대 주도의 개헌 준비가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를 저지해야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천하태평이다. 6.13 지방선거와 동시개헌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한국당은 개헌 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입을 닫고 있다.

    그나마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도다. 정말 이러다 ‘황제대통령제’로 개헌이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상상만으로도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제왕적대통령제’가 유지되는 낡은 6공화국체제는 그 명운을 다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성난 민심이 촛불을 들고 외친 함성 역시 ‘제왕적대통령제’가 유지되는 낡은 6공화국체제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전문가집단인 국회 개헌자문위원들 절대다수가 분권형 정부제인 이원집정부제 안을 선호하는 것은 제왕적대통령제 폐해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폐단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노태우정권 시절엔 ‘6공황태자’라는 박철언 씨가, 김영삼정부에선 ‘소통령’으로 통하던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문제가 됐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당시엔 대통령의 아들 홍일·홍업·홍걸 삼형제가 모두 비리에 휘말려 ‘홍삼트리오’라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 씨는 관가에서 나도는 '형님 인사설'로 인해 ‘봉하대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엔 ‘영일대군’으로 통했던 이상득 전 의원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급기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까지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 없다. 제왕적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한 그런 폐단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 폐단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통해 6공화국을 여기에서 막 내리고 새로운 ‘제 7공화국’ 시대를 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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