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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내달 1일 개헌안 당론 채택을 위한 의원총회를 앞두고 소속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서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설문조사 질문지에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들이 모두 망라됐지만, 정작 중요한 권력구조 선거구제에 대한 항목은 빠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단일 의견을 미리 정하지 않아야 여야 지도부 협상에서 유연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문항을 뺀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미덥지 못하다.
왜냐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선 ‘4년 중임제’라는 사실상의 호헌 입장을 피력한데다가 ‘2단계 개헌’ 가능성까지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정부와 여당은 권력구조를 바꾸는 문제, 즉 제왕적대통령제를 종식시키는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다만 지난 대선 당시 개헌을 약속했으니 안할 수도 없어서 형식적인 개헌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지금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선 개헌을 통해 ‘제왕적대통령제’의 부패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7공화국이 만들어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낡은 6공화국 체제에선 그 누구도 제왕적대통령제 폐해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노태우정권 시절엔 ‘6공황태자’라는 박철언 씨가, 김영삼정부에선 ‘소통령’으로 통하던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문제가 됐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당시엔 대통령의 아들 홍일·홍업·홍걸 삼형제가 모두 비리에 휘말려 ‘홍삼트리오’라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 씨는 관가에서 나도는 '형님 인사설'로 인해 ‘봉하대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엔 ‘영일대군’으로 통했던 이상득 전 의원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급기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까지 당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정부에게 그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 없다.
그런데 여권은 권력구조 개편 없는 개헌, 즉 낡은 6공화국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개헌을 하겠다니 걱정이 크다.
이를 저지하려면 덩치만 크고 무기력한 자유한국당보다는 제 3지대 정당이 역할을 해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3지대 정당은 지금 ‘통합’이 아닌 분열의 길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을 반대하는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은 28일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 대회를 갖고 신당창당을 공식화한다고 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평창 동계올림픽과 설 연휴 직전 통합 전당대회를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통합신당과 민주평화당이라는 두 개의 제3지대 정당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두 개의 정당 모두, 개헌에 대해선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표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사실 최고의 개혁은 분권형 개헌이다. 박근혜.이명박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에서 드러났듯, 적폐의 정점에는 제왕적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제왕적대통령제를 혁파하지 않는 적폐청산은 말장난일 뿐이다.
따라서 통합신당과 민주평화당은 2월4일 전당대회 이전에 이 점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당의 입장과 방향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제왕적대통령’의 폐해를 종식시키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처럼 ‘4년 중임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아직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걱정이다.
특히 민주평화당은 노골적으로 ‘여권과 협력하는 야당’을 표방하고 있어, 개헌 문제도 그렇게 휩쓸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3지대 통합과 분열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에 불과하지만 개헌문제는 국가의 백년대계가 달린 매우 중차대한 문제다. 이를 소홀히 하는 통합과 분열, 그로 인해 개헌을 ‘개악(改惡)’으로 마무리할 경우 역사는 통합신당과 민평당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이제 2월4일 전당대회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이전에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는 조속한 만남을 통해 개헌문제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정하고 국민 앞에 그 입장을 당당하게 공개해 주기 바란다. 민평당도 마찬가지다. 개헌 문제까지 민주당 2중대 노릇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헌 문제만큼은 ‘7공화국 개헌’이라는 독자적 입장을 유지해 나갈 것인지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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