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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의지를 피력했는가하면 지난 5일에는 직접 정책기획위원회에 정부개헌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수차례의 개헌의총을 통해 개헌 당론을 확정 지었다. 얼핏 보면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개헌의지가 매우 강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말 그런 개헌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익히 알다시피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이른바 ‘개헌 저지보고서’라는 걸 만들고, 개헌 이슈가 부각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해한 바 있으며, 당시 국민의당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향해 “문건의 작성 경위를 밝히고 개헌 방해세력을 개헌특위에 참여시켰다는 의혹을 해명하라”며 총공세를 펼쳤었다.
그토록 개헌에 부정적이었던 집권세력이 왜 갑자기 개헌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일까?
대선 당시로 돌아가 보자. 그 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제왕적대통령제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촛불시위 현장에도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을 들고, 국정운영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됐다. 그런 상황에서 제왕적대통령제를 폐지하는 분권형 개헌을 반대한다는 건 ‘호헌’세력으로 비쳐질 위험성이 다분했다.
그래서 당시 보고서는 “개헌 반대론을 고수하는 것은 비문(비 문재인) 전선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전략적 수정을 시도해 (개헌론의) 사전 차단 또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문 대통령이 개헌반대 세력으로 비쳐질 경우에 개헌을 연결고리로 하는 반문연대가 형성될 것이고, 그로 인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도 개헌세력으로 위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문 대통령이 계속해서 ‘개헌’을 주장하는 건, 당시 보고서의 조언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더구나 보고서에는 “현실적으로 대선 후 개헌을 약속한다 해도 대선 뒤의 경제 위기나 각종 현안으로 개헌 추진이 동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는 설사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하더라도, 어차피 지킬 수 없는 ‘공약(空約)’이 되는 것인 만큼 개헌을 ‘공약(公約)’해도 무방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개헌을 완강하게 반대하던 문 대통령은 그로 인해 궁지에 내몰리자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 국민투표를 약속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지금 문 대통령이 개헌을 하자고 말하는 건 바로 그 대선공약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제왕적대통령제를 폐지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는 손톱만큼도 없는 것 같다.
설사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더라도 국회통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석수121석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의 연합’을 선언한 민주평화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 이어 자유한국당의 일부 협조까지 끌어내야만 가능한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이 ‘개헌’을 말하는 건, 개헌이 불발로 끝날 경우에 야당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일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의 반대로 개헌이 무산됐다고 뒤집어씌우고 이를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는 얄팍한 수를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안 대표는 “문재인표 개헌안을 얘기해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끌어낸 꼴”이라며 “더불어민주당도 난데없이 4년 중임제로 당론을 마련해 야당의 반대를 유도하다시피 했다. 한국당과 협의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한데, 개헌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정당을 자처하고 나선 제3지대 정당은 어찌해야 하는가.
당연히 제왕적대통령제 폐해를 전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등 대국민 설득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게 지방선거의 주요한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민주평화당은 제왕적대통령제 ‘보완’을 말하고 있으며, 바른정당은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국민의당이 ‘제왕적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낡은 6공화국체제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래선 제3지대 정당이 거대한 집권여당과 제1야당에 맞서 승리할 수 없다. 낡은 6공화국 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7공화국 시대를 여는 개헌이야말로 국가의 백년지계(百年之計)아니겠는가.
따라서 다른 건 몰라도 개헌 문제만큼은 국민의당, 민평당, 바른정당 등 ‘제3지대 정당’이 단일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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