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전야제
박 생 규 수도권 사회부장
시민일보
| 2003-05-15 19:53:06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저녁 신문사 일을 서둘러 끝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안양에 있는 모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이날 모임은 평소 존경했던 전범중 교수님를 모시고 함께 수학했던 국어국문학과 동기생들이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 생각하니 벌써 대학을 졸업한지도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해마다 그랬지만 이날만 되면 찾아뵙지 못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터였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제자 노릇을 제대로 한번 못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스승의 날’을 맞아 교수님을 찾아뵙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얼마 전부터 1년에 한두번 인사를 드리곤 했다.
스승은 오래 전에 정년퇴임을 하고 관양동에 있는 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노총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왜 결혼 안 하시고 혼자 사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금이라도 마땅한 여인이 나타나면 결혼 할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짝을 찾고 있는 중 이라는 얘기다. 연세가 76세를 맞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날 모임에서 스승은 미니 특강을 통해 ‘역사법’을 강의했다. 이 법은 예를 들면 100세까지 살고 싶다면 100에서 현재 나이를 빼고 나머지 나이를 해마다 줄이면 된다.
이 말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나이를 줄이는 방법이다.
업어치나 매치나 결과는 같지만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20년만에 들어보는 뜻 깊은 강의였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자기 20년전 강의하시던 모습이 술잔 속에 떠올랐다. 그 당시 작은 키에 꼿꼿한 성격의 소유자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옛 모습이 간간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건강하게 늙어 가시는구나 생각돼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자리가 무르익자 모임을 찾은 동기들의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동기들도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스승은 흐뭇해했다.
모든 옛일들이 순간 머리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바로 엊그제 4년동안 동고동락했던 동기들이 흰머리가 난 40대 초반 중년이라니 인생무상을 느꼈다.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는 걸 모임에서 새삼 깨달았다.
한편 동기들이 중년을 넘고 있는 동안 스승은 할아버지가 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 난후 꼭 이날이 아니더라도 진작에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더라면 하는 후회하는 마음으로 독백을 해보았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꿋꿋하게 교육현장을 지키는 선생님과 이미 정년 퇴임을 하신 이 땅에 모든 스승님들께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스승의 건강을 빌며 전야제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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