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는 옷’을 찾아라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 김태희가 사는 법
시민일보
| 2007-12-09 19:28:38
진부한 캐릭터·연기 못하는 배우 이미지 굳어
연기력 부족 역이용하는 ‘백치’캐릭터 찾아야
김태희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늘상 따라붙는 ‘연기력 논란’도 예외 없이 따라왔다. 지난 수주일 간 김태희와 그녀의 신작영화 ‘싸움’을 두고 양산한 기사는 대개 맥락이 같았다. , , 등 일정기간이 지난 뒤엔 제목만 봐도 내용을 훤히 알 수 있을 듯한 기사가 넘쳐났다. 덕택에 ‘싸움’의 마케팅은 꽤나 성공적으로 진행된 셈이다. 김태희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자연스레 논란 마케팅을 끌어낼 수 있는 특이 코드임을 증명했다.
‘연기력 논란’이란 결국 대중문화계 ‘실력파 논란’의 한 가지다. 가수는 마찬가지로 ‘가창력 논란’을 겪는다. 사실 더 언급할 것도 없을 만큼 구시대적 발상이라 어이가 없긴 하다. 현대 예술에서 ‘실력파’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한 것은 거의 50년도 더 전이다.
“예술은 폭발이다”를 외친 미술가 오카모토 타로 등 전통적인 ‘실력’, ‘기술’을 부정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런 사고는 곧 20세기 예술 근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대중문화계도 이런 흐름을 탔다. 매번 똑같은 표정으로 어정어정 걷기만 했던 존 웨인은 미국영화계의 상징으로 통하며 존경받았다. 연기 못하는 배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실베스터 스탤런조차도 자신의 본래 어투와 행동거지에 꼭 맞는 ‘록키 발보아’ 역을 만나-사실 자신이 직접 쓴 각본이니 만날 것도 없이 자신에게 맞췄다 봐야한다-대호평을 받으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결국 ‘맞는 옷’을 입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런 점에서 김태희의 ‘진짜’ 문제는 ‘연기력’이라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진짜 문제는 ‘맞는 옷’을 제대로 입어본 일이 없다는 데 있다. 기본 연기력이 부족하면 소화 영역이 좁아진다는 단점은 있어도, 그 내에서 역할 할 배역은 언제나 있다. 그럼에도 김태희가 연속적으로 ‘맞는 옷’을 못 골라 ‘연기력 실패 신화’를 만들어낸 까닭은, 자기 마케팅을 너무 근시안적으로 행한 데 따른다.
김태희는 데뷔 초반에 ‘서울대’를 너무 많이 팔았다. 대학 성적표까지 공개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직업 외적 요소에 전폭적으로 마케팅 중심을 두다보니, 실제 본업 영역도 이를 따랐다. ‘서울대’라는 학벌이 주는 ‘고급화’ 이미지로 갔다.
어차피 신인여배우는 트렌디 드라마로 시작하는 것이 상례이고, 트렌디 드라마 구조 내에서 ‘고급화’를 택한다는 건 그저 크게 튀는 일 없이 진부한 캐릭터를 맡는 방식이다.
그러나 서울대를 졸업하자 마케팅 방향도 무너졌다. 남은 것은, 트렌디 드라마에서 굳어진 ‘평이한 캐릭터’ 이미지와, 그마저도 소화 못하는 연기력이었다. 김태희는 곧 ‘미모의 서울대학생 배우’ 대명사에서 ‘미모지만 연기 못하는 배우’ 대명사로 탈바꿈했다.
김태희 신작 ‘싸움’은 이 딜레마에 대한 김태희식 대답이다. 적어도 이런 악조건에 한계를 느끼고 바꿔야 한다는 것 정도는 인식을 한 셈이다. ‘싸움’에서 김태희는 확실히 ‘망가진다’.
추레한 옷을 입고 트림도 하고 가운뎃 손가락 욕도 한다. 거친 행동과 말을 일삼는다. 고상한 면모는 온데 간데 없다.
고상하건 안 하건 크게 달라질 게 없다. 그런 식의 ‘외형적 이미지’는 그녀가 몰두하는 CF에서나 중요하지 극예술 콘텐츠에서 중요시 될 건 아니다. 외형적 이미지 파괴는 대중의 고정관념에 충격을 주고,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어필하는 효과 정도만 내준다. 그게 다다.
충격은 곧 사그러든다. 진정성도 한 번 팔면 더 팔 것이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또 연기력 논란이다. 이런 건 ‘맞는 옷’과는 거리가 멀다. 온갖 기행들을 벌인 ‘진주’이지만, 여전히 이전 김태희 캐릭터들처럼 그저 만화적으로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기 못하는 배우에게 ‘맞는 옷’ 찾기란, 고정 이미지로 장난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연기력 부족을 역으로 이용하는 캐릭터를 찾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김태희가 지금 선택해야 할 방향은 조금 의외의 곳에서 찾아야 한다.
어색한 대사, 과장된 표정, 부자연스런 몸동작이 캐릭터 자체에 녹아내릴 수 있는 배역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백치’다. 머리에 아무 것도 든 것 없이 무의미하고 무책임한 행동과 말을 일삼고, 사실 말도 잘 못해야 한다. 행동도 엉성하고 표정은 굼떠야 한다. 이것이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순식간에 돌변시켜 주는 캐릭터다.
‘싸움’의 ‘진주’는 보이는 행동만 거칠 뿐이지 기존 김태희 캐릭터와 사실상 같은 맥락이었다. 똑똑하고, 신경질적이며, 멜로성을 안고 있다. 마이너스가 플러스로 바뀔 리 없다.
이런 ‘백치’캐릭터는 김태희를 오랜 기간 위치시켜준 ‘서울대’ 콘셉트와도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하버드대 출신 미라 소르비노는 분명 성실한 연기자임에도 학력과 배경이 주는 한계 탓에 빛을 못보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백치 창녀 역을 맡아 빅뱅을 일으켰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수상했다.
극과 극은 원래 만난다. 초반에 ‘학벌’이라는 사회적 갈등요소까지 대두시키며 만들어낸 거창한 마케팅은 ‘고상한 이미지’만 파괴한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다. ‘자연인으로서 자기 자신’ 이미지까지 뿌리째 뽑아내야 비로소 지울 수 있다.
결국 무의미한 연기력 논란에 자신도 휩싸여버려 끊임없이 ‘따라잡기’와 ‘충격효과’에만 집중하느니보다는, 좀 극단적이더라도 이런 식의 ‘맞는 옷’을 입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불편한 요소들을 감수하더라도 자기 연기가 제대로 역할,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연기자로서의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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