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에서 피해자를 지킬 탐정, 이제는 제도 속으로

    칼럼 / 시민일보 / 2025-07-31 1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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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올해 7월, 대전·울산·의정부에서 잇따라 발생한 교제폭력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 안전망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대전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신고가 이어졌지만 피해자는 결국 살해되었고, 울산에서는 두 차례 교제폭력 신고에도 불구하고 20대 여성이 병원 주차장에서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의정부에서는 60대 남성이 50대 여성을 살해했다. 이 사건들 모두 사전 신고가 있었으나 경찰과 법원의 대응은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목숨을 잃기 전까지 보호받지 못한 현실은 제도의 공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현재 교제폭력 대응의 구조적 한계는 명확하다. 피해 신고부터 실질적 보호조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그 사이 가해자의 접근과 위협이 지속된다. 경찰의 제한된 인력으로는 24시간 밀착 보호가 어렵고, 법원의 보호명령 발령 역시 신청 후 수일에서 수 주가 걸린다. 특히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라는 특성상 피해자가 심리적 압박을 받아 신고를 철회하거나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수사와 보호조치가 중단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여성긴급전화 1366에 접수된 교제폭력 상담은 1만 1,338건, 스토킹 상담은 1만 4,553건으로 2023년 대비 각각 23.4%, 61.4% 증가했다. 경찰청 통계에서도 2020년 4만 9,225건이던 교제폭력 신고가 2024년 8만 8,394건으로 80% 가까이 증가했고, 스토킹 신고는 4,515건에서 3만 1,947건으로 7배 폭증했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는 여전히 사후적이며, 교제폭력은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에 명확히 포함되지 않아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신고를 해도 실질적 보호조치가 미비한 이유다.

    해외는 다르다. 프랑스는 보호공백을 막기 위해 청구 시 24시간 내 즉각 보호명령을 발령하며, 스웨덴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접근 금지 명령으로 실질적인 분리를 보장한다. 미국은 여성폭력방지법(VAWA)에서 교제폭력을 명시해 민사보호명령을 통해 피해자를 빠르게 격리시킨다. 특히 미국 일부 주에서는 민간 보안업체와 탐정이 피해자 보호에 적극 참여하여 공권력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호주 역시 가정폭력법 내 교제폭력을 포함해 긴급명령을 즉시 발동한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피해자 보호의 핵심은 신속하고 강력한 선제적 조치이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바로 이 지점에서 '탐정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경찰 인력이 부족하고 사건의 법적 요건 판단이 지연되면서 그사이 가해자의 보복과 재범이 발생한다. 탐정은 공권력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피해자 주변의 위험 신호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반복되는 접근이나 위협을 기록해 초기 대응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는 탐정이라는 명칭 사용은 허용되었지만 자격, 업무범위, 감독체계가 법적으로 정립되지 않아 무자격 흥신소나 불법 사설조사가 난립하고 있다. 반면 미국, 일본, 독일 등 OECD 국가들은 이미 탐정을 제도권에서 관리하며 피해자 보호·민사 조사 등 공적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일본은 도도부현 공안위원회를 통한 등록·감독 시스템을 운영하며, 영국은 자격증을 기반으로 한 공인탐정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만 제도화에 뒤처져 있어 음성시장이 커지고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다.

    탐정은 단순히 민간 조사원이 아니다. 교제폭력 사건에서 탐정은 피해자의 심리 상태와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스토킹 징후와 위협 패턴을 기록해 경찰의 재범위험성 평가(KORAS-G, SAM)와 같은 과학적 분석을 보완할 수 있다. 현재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 시 과학적범죄분석시스템(SCAS)을 통해 프로파일러가 재범위험성을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주로 신고 당시의 정보에 의존한다. 반면 탐정은 지속적인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가해자의 행동 변화, 피해자 접근 시도, 주변 환경의 위험 요소 등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여 위험성 평가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탐정은 디지털 스토킹 추적, CCTV 분석을 통한 가해자 동선 파악, 피해자 주변 인물들의 안전 확보 등 경찰이 제한된 인력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세밀한 조사를 담당할 수 있다. 특히 사이버 스토킹이나 온라인 협박의 경우 전문적인 디지털 포렌식 기술이 필요한데, 이 분야에서 민간 탐정의 전문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피해자가 진술을 주저할 때 탐정의 조사보고서는 수사기관의 판단 근거가 되고, 법원의 분리조치나 접근금지 명령 발령에도 실질적 힘을 더할 수 있다.

    물론 탐정제도의 도입에는 사생활 침해, 불법 정보수집 등의 우려가 따른다. 그러나 이는 명확한 법제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자격 기준을 마련하고, 조사범위와 금지사항을 명시하며, 위반 시 강력한 처벌을 부과하면 음성시장은 자연스럽게 억제된다. 특히 개인정보보호법과 연계한 엄격한 정보관리 규정, 정기적인 교육과 윤리 강화를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지금은 탐정을 제도 밖에 두어 위험을 키울 것이 아니라, 법적 틀 안으로 끌어들여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자산으로 활용해야 할 때다. 교제폭력은 더 이상 사적인 갈등이 아니다. 경찰만으로는 모든 위험을 예방할 수 없다. 이제는 탐정이라는 민간의 눈을 제도 속에 넣어, 공권력의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 피해자가 살려달라는 외침을 반복하기 전에, 사회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반복되는 비극을 멈추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경영학박사 ▲前총경, 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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