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일보 = 여영준 기자] 여야가 합의한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대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권력 수사 공백과 민생 사건 처리 지연 등 대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24일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 없이 이뤄진 정치권 합의에 대해 '야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라며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안착 때까지 형사사법 체계 전반에서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의장의 중재안에는 현재 검찰청법 4조 1항에서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에 한정한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를 부패·경제범죄 2개로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공직자와 선거 범죄를 검찰 직접수사 범위에서 제외한 것은 정치권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겠다는 여·야의 암묵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 사건은 공소시효가 6개월로 매우 짧은 반면에 법리의 적용이나 해석은 까다로운 경우가 많아서 중요 선거 범죄는 그동안 검찰 내에서도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전문가들이 도맡아 수사해왔다.
이러한 사건이 노하우가 적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간다면, 상당 기간 수사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경찰이 서너 달을 끌다 송치하면 검찰은 사건을 살펴볼 시간이 부족해 결국 경찰 의견대로 기소하는 식으로 사건을 끝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아닌 다른 수사기관이 권력 수사 과정에서 들어오는 '외압'에 맞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공직자범죄 수사는 기본적으로 권력자나 그 주변을 겨냥해 벌어지는 데 신분보장이 되는 검사가 아닌 다른 수사기관이 이를 맡는다면 정치권의 입김이나 윗선의 압력에 취약해질 것이란 지적이다.
박 의장의 중재안에 담긴 보완 수사 제한 규정을 두고도 비판이 쏟아졌다.
중재안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수사권은 유지하되,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는 금지했다.
그러나 중재안에 담긴 제한적인 보완 수사로는 민생범죄에서 발생하는 경찰의 과잉수사나 인권침해를 바로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중재안 내용이 공개된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중재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1%도 안 되는 권력형 범죄만 딜(협상)의 대상이고 99% 서민사건, 민생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통제 방안은 전무하다"며 "과잉 또는 부실 수사 전반에 대한 통제와 인권 옹호 기능은 전혀 보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중 민생 피해사건의 수사가 검찰과 경찰의 '사건 핑퐁'으로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언급하며 "경찰이 고소 취하를 종용하거나 고소장을 선별 접수하는 등 사건을 회피한다고 한다. 이의신청이나 보완수사 등 절차를 거치면서 수사가 지연되고 사건이 적체되고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사건 당사자의 피해"라고 지적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중재안에 따르면 검찰은 송치 후 수사 과정에서 추가 피해자나 범죄 혐의를 포착하는 경우, 사건을 다시 경찰에 돌려보내거나 경찰의 별도 수사 후 송치를 기다려야 한다"며 "피해자가 많은 다중 피해 범죄의 경우 이러한 절차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수사 지연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른바 한국형 FBI(미연방수사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가 검찰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법무부 산하 수사기관인 FBI는 국가안보 관련 범죄, 연방 공무원 증·수뢰 범죄, 중요 도망 범죄자 수사 등을 담당한다. 수사가 종결되면 검사에게 사건을 넘겨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한다. 관할 사건만 수사하고 경찰과 같은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를 지휘하지 않는다.
중수청 등 특별수사청 설치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이수진, 오기형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3건이 국회 계류 중이다. 20대 국회에서는 곽상도 전 의원이 발의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들 법안은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분리해 검사는 공소제기와 유지, 헌법상 영장 청구·집행에 관한 권한만 갖도록 한다. 검찰이 그간 직접 수사한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는 중수청이 맡는다.
중수청이 일차적으로 6대 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을 직접 수사한 뒤 검찰에 넘기면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 및 기소 이후 공소 유지는 검찰이 맡는 '투트랙'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이 이뤄지게 된다.
이들 법안에는 범죄의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중수청을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두고, 지역적인 사무 분담을 위해 지방특별수사청(지방수사청)을 둔다고도 규정돼 있다.
여야가 이번 주 중 검수완박 중재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면 국회 사법개혁특위를 구성해 6개월 내 입법을 완료하고, 1년 이내에 중수청을 발족해야 한다.
그러나 중수청 입법 작업에서는 우선 수사·기소 문제가 다시 대두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강제수사 기능을 부여하는 각종 영장 청구를 검찰이 하게 되면 수사권은 없는데 사실상 수사 행위를 하는 모순에 빠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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