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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마지막 ‘급전 창구’인 카드론과 현금 서비스 등 카드대출이 역대 최대 규모인 44조 6,650억 원으로 불어나며,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도 3.1%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의 급전 통로인 카드대출은 팍팍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송두리째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내수 부진 여파에 생활비가 부족한 경제 취약층이 늘어난 것도 카드빚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은행권 대출 문턱을 높이자, 상대적으로 돈 빌리기가 한결 쉬운 카드대출로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수 부진과 경기 둔화 그리고 고금리·고물가 속에 빚 부담이 늘고 대출 규제 등으로 인해 은행 문턱이 높아지자 한 푼이라도 아쉬운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에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카드론과 현금 서비스를 쓰고 있다. 중·저신용자, 저수익 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의 카드빚 상환 부담이 한계에 달한 게 아니냐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빚의 악순환’ 우려마저도 더욱 커지고 있다. 경제의 약한 고리들이 늘어나며, 위기의 폭발력이 더욱 커간다는 의미라서 체감하는 충격은 더욱 크다.
지난 9월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카드대출 및 연체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말 기준 카드대출(장기 카드론·단기 현금서비스) 규모는 44조 6,650억 원(1,170만 9,000건)으로 2023년 말 41조 5,530억 원보다 7.5% 증가했다. (장기) 카드론 규모가 38조 7,880억 원(648만 2,000건)으로 같은 기간 8.2% 늘었고, (단기) 현금 서비스 규모는 5조 8,760억 원(522만 7,000건)으로 같은 기간 2.8% 증가했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관련 통계를 추산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최대 규모다. 일반적으로 카드사에서 받는 카드대출은 시중은행 등 1금융권에 견줘 더 높은 금리 때문에 신용점수가 낮은 취약차주들이 찾는다. 올해 상반기 중에는 피에프 부실 관리에 나선 저축은행이 몸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카드사를 찾은 이들이 특히 많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차주들의 부담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카드대출의 연체 지표는 경기 둔화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로 꼽힌다는 점이다.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늘어나는 빚의 양(量)보다 나빠지는 빚의 질(質)이다. 카드대출의 규모가 커지면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 채권 기준)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카드대출 연체율은 2019년 말 2.3%, 2020년 말 2.1%, 2021년 말 1.9%로 하락세를 보였으나 2022년 말에는 2.2%, 2023년 말에는 2.4%로 올랐고, 올해 8월 말 기준으로는 3.1%까지 급격히 상승했다. 연체 금액 역시 지난해 8월 말 1조 2,220억 원에서 올해 8월 말 1조 3,720억 원으로 1년 새 12.5%인 1,500억 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연체 금액은 ‘카드 사태’가 있었던 2003년 6조 600억 원과 2004년 1조 9,880억 원을 제외하면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통계청이 지난 9월 30일 발표한 ‘2024년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전 산업 생산지수는 7월보다 1.2% 늘었다. 산업생산은 지난 5월(-0.8%) 이후 석 달 연속된 감소 추세에서 벗어나 4개월 만에 반등했고 소매 판매는 18개월 만에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올해 1∼8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19.7%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63년 이후 처음으로 20% 선 아래로 떨어졌다. 내수 위축으로 자영업이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서민들이 이용하는 카드론과 현금 서비스가 지난 8월 말 기준 역대 최대인 44조 6,650억 원으로 급격히 늘었고 연체율은 3.1%로 가파르게 수직상승을 했다. 21년 만에 맞는 최악의 카드론 비상이다.
카드론과 현금 서비스는 제1금융권이나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마지막에 찾는 급전 창구다. 같은 액수를 빌려도 상환 부담이 훨씬 크다. 평균 연 14~15%의 고금리가 적용되는 탓이다. 게다가 이미 다른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단 빚을 냈지만, 이를 갚을 여력이 녹녹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빚이 빚을 낳으면서 상환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연평균 금리 14∼15%나 되는 급전 창구가 붐비는 것은 고금리·고물가로 그만큼 서민 경제가 어려워졌음을 극명하게 알리는 분명한 경고음이다. 정부는 지난 7월에 25조 원 규모의 소상공인 종합대책을 내놓았으나 주로 전기료 감면과 저금리 ‘대환 대출’을 지원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달 중으로 자영업 대책을 추가로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배달 플랫폼 개혁 방안을 담을 방안이지만 핵심 과제인 자영업 채무 조정을 포함하지 않으면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빚을 갚지 못해 ‘채무 조정(신용 회복)’에 나선 취약 계층도 크게 늘었다. 지난 9월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받은 ‘최근 5년간 채무 조정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 1~8월 ‘채무 조정’ 확정 건수는 11만 5,72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전체 ‘채무 조정’ 확정자 16만 7,370명의 69.14% 수준으로, 최근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도 작년 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고정 수입이 적고 재기가 어려운 60대 이상이 전체의 14.8%를 차지했다. ‘채무 조정’ 확정자는 지난 2020~2022년 11만~12만 명 수준을 유지하다 고금리·고물가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16만 명대로 급증했다. 채무 조정은 빚을 갚기 어려운 대출자를 위해 상환기간 연장, 이자율 조정, 채무 감면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연체 기간 등에 따라 신속 채무 조정(연체 기간 1개월 미만), 프리 워크아웃(1~3개월), 개인 워크아웃(3개월 이상) 등으로 구분된다.
빚의 악순환을 막고 취약 계층의 대출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험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려면 정부와 금융 당국이 부채 구조조정을 통해 총량을 줄여가야만 한다.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불법 사금융에 손대지 않도록 제도적인 지원도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오는 10월 17일부터 시행되는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개인채무자보호법)」이 조기 안착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채무자가 개인회생 대신 직접 금융기관에 채무 조정을 요구할 수 있고, 추심요건도 엄격히 제한한다. 연체 가산 이자는 연체 금액에만 물리도록 개선했다. 이와 함께 도덕적 해이를 야기(惹起)하지 않으면서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할 제도적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고통스럽겠지만 자영업 구조조정으로 부채 총량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불가피한 선택이자 첩경이다. 특히 카드대출은 통상 금리가 높다. 9개 카드사의 카드론 평균 금리는 연 14% 내외 수준에서 형성돼 있지만, 카드대출을 이용하는 대다수는 저신용자(신용점수 700점 이하)로 17%의 고율이자가 적용된다. 부실이 금융권 전반으로 전이되기 전에 리스크(위험)관리에 힘써야만 한다. 지난 9월 1일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한 제2의 풍선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국가적 중증 질환인 가계부채, 집값 거품 등에 대응하기 위한 DSR 규제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취약 계층’이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경계가 요구되는 징후는 한둘 아니다. 지난 8월 말 제2금융권 가계대출이 2022년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3년 전 ‘영끌’과‘빚투’ 당시 학습했던 카드론 증가 사례도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제2의 카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 당국은 카드론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유연하게 선제적 관리에 나서고, 수수료 수입 감소에 따른 수익 확보를 위해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카드사들도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서 리스크(위험)관리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당면과제는 안전한 출구 마련이다. 당연히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포퓰리즘적인 처방은 금물이겠지만 국가의 지원과 배려가 없어서는 안 될 보호 대상자들에 한해서는 채무 조정을 비롯한 구제 카드를 적극적으로 서둘러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도권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 시장도 점검해야 한다. 대부 업체들은 돈을 빌려줄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 탓에 대출 규모를 줄이고 있다. ‘빚내서 빚 갚는 악순환’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이마저 끊기면 무엇이 남을 것인지를 냉정히 그리고 심각하게 돌아볼 일이다.
한국금융소비자학회와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지난 8월 22일 은행회관에서 ‘우리나라 서민금융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2021년 7월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함에 따라 2021년 기준 2.7%이던 불법 사금융 이동률은 2022년 3.8%로 1.1%포인트 상승했다고 발제를 맡은 한국금융연구원 이수진·박준태 연구위원은 밝힌 바 있다. 불법사금융 이동 인원으로 보면 이 기간 2만 명에서 3만 3,000명으로 1만 3,000명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은 또 지난해 기준 대부업체의 개인신용대출 원가 금리는 조달원가 7.8%, 업무원가 3.1%, 자본원가 3.2%, 신용원가 8.0∼9.0%를 합한 22.2∼23.1%로 법정 최고금리를 웃돈다고 밝혔다. 그렇다. 법정 최고금리 20%는 대부업체의 개인신용대출 원가 금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법 사금융을 키우는 불합리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최고금리 제한을 시장금리에 연동할 수 있게라도 해줘야만 불법 추심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벼랑 끝에 선 금융 취약 계층을 위한 보다 섬세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급전 창구마저 불이 꺼지게 그대로 방관(傍觀)하고 방치(放置)하며 방기(放棄)하고 그냥 내버려 둬선 절대로 안 된다. 국가의 책무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보듬고 감싸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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