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두바이 왕 술탄'급 '디벨로퍼' 박성현 편

    칼럼 / 시민일보 / 2025-02-16 11:48:52
    • 카카오톡 보내기
     
    박성현, 그의 직업은 디벨로퍼다.   


    20대 때 대한민국에 콘도라는 신문물을 공급했던 명성 콘도 김철호 회장을 만났고 24세 때 트럼프를 연구했다.


    그 후로 다른 청년들처럼 구직을 하지 않고 디벨로퍼로서 세상을 살기로 했다.

    20대에 양평에 있는 선친의 땅을 기반으로 전원주택을 개발하고, 29세 되던 해에는 김포 장기리 준 농림 8만 평에 국내 최대 규모인 3440세대 아파트 허가를 받아 개발했다. 이 당시 1군 건설사의 준 농림 개발 규모가 500세대였을 때 한 일이다. 

    "서른네살에는 파주 교하지구에 5000세대 아파트 시행을 했고,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과 파주 야당리 일원 약 100만평의 미니 신도시 건설을 위해 토지를 매입하여 약 3000세대의 아파트 인허가를 신청할 당시에 IMF 한가운데 였다.

    "아파트 개발사업으로 최고 수익률을 올렸던 당시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운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겠더라고요. 지인들이 '월세방이냐, 전세방이냐!'를 고민할 때, 그는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 손자와 합작기업을 세웠으니까요."

    디벨로퍼 박성현! 그는 콜럼버스를 닮은 "디벨로퍼"로 만 30여년을 살았다.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로 영어로 상식화된 직종은 존중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브로커! 그리고 디벨로퍼다.


    브로커나 디벨로퍼의 종주국인 미국에선 특별한 대접을 받는 직업군이고 이제 디벨로퍼협회까지 만들어져 건설 자본을 가진 투자자 집단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어림없다.


    사전적 의미로서 브로커는 매개인으로 표기되고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의 전 과정을 수행하는 전문가로 표기되어 있지만, 한국의 세상 언어로는 이 두 단어가 거의 동의어로 해석되기 다반사다.


    허황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 그렇게 치부되는 "디벨로퍼"로 살아온 그의 삶이 흥미롭다.

    그에게 "디벨로퍼" 는 과연 무엇인가? 물었다.


    "탐험가로 사는 거지요" 의외의 단답형이다. 


    옛날엔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탐험이었다.


    지구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는 세상 속에서도 지구는 둥글다고 믿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그는 "탐험가라는 단어가 디벨로퍼와 동의어는 아니나 아주 특별한 용기와 상상력이 탐험가의 기본자질 이어서 오늘날, 창의력이 필요한 디벨로퍼의 본질과 상당히 일치한다." 라고 말했다.


    그가 디벨로퍼의 뿌리로 보는 사람은 지구의 대륙과 인종들을 찾아내고 문화적, 경제적 융합을  해냈던 탐험가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가 이 분야의 대표적 인물로  생각하는 사람은 "콜럼버스" 다.   

    인도에 가서 "배에 황금을 가득 싣고 오겠다!"라며 떠났던 그가 도착한 곳은 오늘날 미국이었다.


    그곳에 있던 원주민들이 느닷없이 인디언으로 불리게 된 것도  순전히 콜럼버스의 오해 탓이었다.

    "콜럼버스는 첫 항해에 지구 최대의 실적인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맙니다. 인도에 가려다가 실수로 일어난 일이지요. 아마도 탐험가와 디벨로퍼의 차이는 그 차이인 듯합니다. 탐험가는 실수로 대박을 낼 수도 있지만, 디벨로퍼는 실수하면 여지없이 박살이 나거든요."

    실제로 그는 대박을 향해 가다가 박살이 되어버린 프로젝트의 수행 경험이 있다.   


    도시개발 사업으로 300조가 훌쩍 넘는 일이었다. 업계에서 칭하는 국가대표급 디벨로퍼라는 말이 어색치 않은 금액이다.

    2009년, 그는 보통사람이 상상키 어려운 일을 진지하게 저질렀다.   


    아니, 특별한 사람도 상상키 어려운 그 일을 박성현은 상상이 아니라 실행계획을 세우고  지방정부로부터 인허가를 받아냈다.   

    인천 앞바다 위에 "8시티"라는 해상도시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16년이 지난 요즘, "빈살만 왕세자"가 600조 원을 쏟아부어 네옴시티를 건설한다고 하니 "세상에서 뭐든지 할 수 있는 남자! "라 부르며 모두 그 앞에 줄을 섰다.   

    그러나 16년 전에 그가 317조원 규모의 해상도시 '8city' 청사진을 내놓고 투자유치계획과인 허가서를 공개했을 때,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그 스케일에 놀랐다. 그러나 큰 일에는 마가 낀다. 했던가? 


    2012년 약 923만평의 개발계획변경 인허가를 마치자, 해당 기관장은 자신이 직접 '8city' 사업을 하겠다며 사업권을 자신과 나누어 개발했고 관철되지 않자 판을 깨 버렸다.

    2013년초, 판을 깨버린 기관장은 "317조원이면 국가 예산인데 317조짜리 프로젝트를 투자유치 한다는 것은 거짓"이라며 언론인들을 동원, 부정적 여론을 형성한 후, 인허가 해지통지를 강행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내 업계 1위 삼일회계법인에서 12조원의 초기투자 비용과 완성 후 도시가치를 317조원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이는 업계의 비상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팩트' 였으니까요." 

    "최고의 전문평가사인 삼일회계법인의 펑가결과를 보고 '8시티'의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했던 기관장은 '연립주택 하나도 못지을 사람' 이라는 대외적 평가 속에 너무 쉽게 8시티' 인허가를 취소하고  계약 해지를 한 후 지자체사업으로  진행하다가 망해버렸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해도 '뉴프런티어'가 없었다면 허당이라는 말이지요." 

    그의 말처럼 2014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 355조였으니 큰일이긴 하지만 탐크루즈 영화처럼 'Impassable'은 아니었다.

    당시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대형자금을 졸지에 움켜쥔 중국의 신흥부자들은 수백조의 현금자산을 해외로 퍼내고 싶어 했고, 대형자금 투자의 명분이 있는 해외 프로젝트만 입증되면 " 더이상 묻지마!"로 달러를 퍼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중국 공산당의 눈을 벗어난 '달러'만이  진짜 돈 이라는걸 박성현은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8city' 프로젝트는 제대로 만들어진 도깨비 방망이 이며 중국의 신흥재벌들의 달러를 해방시키는 비상구이고 '달러박스'가 되었을 것 이다.

    "정말 큰 돈을 담을 커다란 그릇이 필요 했거든요. 용의도, 무의도 개발사업인 '8city', 그때 세계 최초이고 단일개발사업으로는 세계 최대의 해상 인공도심이 만들어 졌으면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두바이로 관광대국이 되었을 겁니다."라며 사자후를 토한다.   

    중국인들이 2008년 올림픽을 8월8일 8시8분에 개막 했다는걸 생각해 보면 'master eight'라는 그의 별칭이 어떤 뜻인지 알 만했다.


    중국에서 8자는 성공과 부귀의 신성상징이다.

    그걸 아는 대기업 군이 움직였다. 


    '8city' 프로젝트 SPC에 함께 참여했던 회사들은 대한항공, 대우건설, 켐핀스키호텔 등이었으며, 세계적인 에이컴 등 엔지니어링회사와 건축설계회사가 참여했으며, 파트너였던 켐핀스키 호텔그룹 레또위트버 회장은 디벌로퍼 박성현을 '지니어스, master eight'라 불렀었다. 그러나 '8시티'는 침몰했다. 

    이 정도 거대한 일이 박살 났으면 그를 이승에선 다시 보기 어려울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여전히 '디벨로퍼'로 분주히 살고 있다. 여전히 대단위 도시개발과 개발사업 프로젝트를 여러 곳에 진행 중인 그에게 물었다.
    "별 일 없었냐?"고   
    "'eight city'는 수천번의 언론에 노출되었고, 해지 이후의 엄청난 후폭풍으로 제 인생의 일부가 날아가 버렸지요.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어요. 프로젝트로 날린 돈 대부분이 개인 돈이었거든요. 다행이지요."
     

    국가 예산과 맞먹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계획과 인허가를 진행했던 '디벨로퍼' 박성현은 현재 10억불 매칭 펀드를 조성 중에 있고, 이 나라 30년 미래첨단기술의 실증도시건설을 위해 분주하다.   

    그런 와중에 2024년 3월5일 '사단법인 한국사우디아라비아 통상협회'를 설립하고 운영을 맡은 그는 한-사우디 간 경제교류 협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열심이다.(그의 협회 명함에는 한국사우디아라비아 통상협회(KOSSA) 대표이사/수석부회장 박성현으로 되어 있다.)

    디벨로퍼 박성현의 2025년이 콜럼버스가 인도를 향해 출항하던 1492년 그때처럼, 그에게 행운의 돌풍이 다시 불어줄까?


    서울 근교의 아버지 땅에  전원주택을 개발하며 디벨로퍼의 첫 걸음을 내디뎠던 청년 박성현은 이제 귀밑머리가 히끗한 장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디벨로퍼'로서의 눈과 귀가 열린 듯 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잇는 사단법인 '한국사우디아라비아 통상협회'를 설립한 이유를 묻자.
     

    "사우디아라비아 비젼2030을 발표한 빈살만 왕세자의 멋진 꿈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왔다. 우리는 지금 비행기를 타고 사막을 건넌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속 석유를 캐내서 살면 우리의 후세는 다시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야 할 것이다. 지금, 석유 한 방울 없이도 번영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건설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비젼 2030의 내용이다.

    '디벨로퍼 박성현'이 여기서 발견한 '빈살만왕세자'의 꿈을 어떻게 대한민국에 접목시켜 동반상승을 할지 주목해 볼 일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