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밥이 되는 순간- 왜 시민은 정치에 참여해야만 하는가

    칼럼 / 시민일보 / 2026-05-17 12: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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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겸 경민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장

     


    “정치에 무관심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는 철학자 플라톤의 이 말은 2,40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의 현실 앞에 다시 서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를 멀고 더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가 멀어지는 순간,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장의 빈 점포에서, 멈춘 공장 굴뚝에서, 줄어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그리고 텅 빈 지역의 거리에서 우리는 정치의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정치와 경제는 마치 강의 두 물줄기와 같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바다에서 만난다. 정치가 방향을 정하면 경제는 그 길을 따라 흐른다. 반대로 경제가 무너지면 정치 역시 흔들린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운명공동체이다.

    국가든 지역이든 경제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산업단지의 조성, 기업 유치, 도로와 철도, 교육 인프라, 관광 개발, 청년 정책, 복지 시스템까지 모두 정치적 결정 위에서 움직인다. 예산은 정치가 배분하고, 규제는 정치가 풀며, 미래 전략 역시 정치가 설계한다. 다시 말해 경제는 정치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는 나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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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지역은 인구가 줄어들고 상권이 무너진다. 반면 어떤 지역은 기업과 사람이 몰려들며 살아난다. 그 차이는 단순한 운의 차이가 아니다. 결국 정책의 차이이며, 비전의 차이이고, 지도자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 지도자를 선택하는 힘은 시민에게 있다.

    우리는 흔히 경제를 숫자로만 이해하려 한다. GDP, 예산, 세수, 투자액 같은 통계들 말이다. 그러나 경제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은 결국 한 청년이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한 상인이 다시 가게 불을 켤 수 있는 것이며, 한 아이가 지역 안에서 꿈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의 본질 역시 권력이 아니라 삶이어야 한다. 정치는 거대한 이념의 전쟁이 아니라 시민의 식탁을 지키는 일이며, 지역의 내일을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이 권력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결국 공동체의 방향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치에 등을 돌리는 순간, 시민은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특히 지방의 시대에 시민의 선택은 더욱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지역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결국 지방정치이다. 어느 기업을 유치할 것인가, 어떤 산업을 키울 것인가, 교육과 문화에 어떤 철학을 담을 것인가가 지역의 흥망을 결정한다.

    정치적 선택은 단순히 한 사람을 뽑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미래 산업을 선택하는 것이며, 다음 세대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일이다. 시민의 한 표는 종이 한 장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그 한 장이 지역의 10년을 바꾸기도 한다.

    오늘날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실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망이 참여를 멈추게 하는 순간, 정치는 더 이상 시민의 것이 아니라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의 것이 된다.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듯이, 시민의 참여가 멈춘 정치 역시 결국 부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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