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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 추진 의사를 피력하면서 특히 국무총리에게 국내 문제 권한을 대폭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헌재가 탄핵소추를 기각해 직무에 복귀하면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구축된 현행 헌법 체제를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자신의 임기 종료 전이라도 임기 단축 개헌을 시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간 정치권에서 거론됐던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개헌안이 나올 수도 있다.
대통령은 외치에 집중하며 내치는 총리에게 권한을 넘기겠다는 대목은 개헌에 앞서 '책임총리제'를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나아가 사실상 내각제 형태에 가까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간 줄곧 87년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필자는 윤 대통령의 이런 최후변론을 적극 지지한다.
모든 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판단에 달렸다.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7공화국 시대를 여느냐, 아니면 여전히 낡은 6공화국 시대에 머무느냐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 모처럼 다가온 개헌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겠지만, 기각하거나 각하할 경우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사실 여야 정치권은 현행 헌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다.
여당이 다수당이면 ‘제왕적 대통령’이 되고, 야당이 다수당이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현행법 때문에 윤 대통령은 ‘12.3 계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고 하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불행은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헌법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대로 선거를 치르게 되면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이재명 대표가 개헌 논의를 거부하고 있으니 문제다.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요지부동이다.
김부겸 전 총리가 이재명과 회동에서 “‘개헌을 하겠다’라는 약속만이라도 하라”고 다그쳤지만, 그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전념할 때”라며 들은 척도 안 했다.
윤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부푼 꿈에 젖어 있는 탓일 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박 전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제안했지만, 당시 조기 대선으로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은 개헌 논의를 거부했다. 당시 문재인도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 위해 87년 체제의 변화 요구를 외면했다. 그 결과가 ‘12.3 계엄’으로 나타난 것이다.
누구든 평소에는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도 정작 자신이 대통령의 꿈에 한발 다가섰다고 생각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헌 논의를 거부하게 된다. 문재인도 이재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헌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 논의를 화두로 던지면 정치권도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 역시 지금은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개헌 논의에 나설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래서 중요하다.
헌법재판관들이 진정으로 나라의 혼란을 방지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기각하거나 각하해 개헌 논의에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헌법재판관들이 이 낡은 헌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최후진술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거대 야당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맞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87년 체제의 낡은 6공화국 헌법이 이런 시대를 만들었다. 이제는 새로운 ‘제7공화국’ 시대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됐다.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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