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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이후 한국 정치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반과 궤도 위에서 그 역량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변화된 시대와 국민의 요구를 읽지 못한 채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을 초래하기도 했다. 2020년대를 맞이한 지금은 ‘정치 부재에 의한 정치 대표성의 상실’이란 본질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 스스로에 의해 정치의 부실과 자기 모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맡겨둘 수만은 없다. 다른 부문의 기능 강화에 따른 국가운영 역할의 분담으로 정치 권력의 분산과 다원화를 불가피하게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권력의 유일한 독점자였던 정치 자체가 자기 권한의 분산과 자기 역할의 축소라는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며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방송은 그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 1970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케네디와 닉슨의 TV토론 이후 정치인의 정치생명은 물론이고 대선이나 총선에서 방송은 중요한 정치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대다수 정치인들이 미디어의 눈치보기에 급급하여 민의나 정책을 주도하지 못한 채 언론에 끌려다니는 수가 허다하다.
게다가 인터넷과 휴대폰의 등장으로 국민들은 기존의 언론을 통해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 받다가 이젠 원하는 정보를 더 빨리 더 다양하게 원하는 시기와 장소에서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2010년대를 지나면서 카카오톡, 트위트,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SNS)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전 국민이 활용하다 보니 국민 스스로가 정치에 대한 의견과 참여를 얼마든지 활성화 하고, 더러는 주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시민단체의 활동이 맹렬하고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총선에서 참여연대에 의한 낙선운동으로 농촌 지역을 제외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상당수의 출마대상자를 낙선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정치인이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던 선거에서 정치 외부의 힘에 의해 정치인이 더 제어 당한 것이다. 물론 위법한 잘못된 방식이지만 그만큼 제도권 밖에서도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국회 입법과 운영, 선거법 개정, 선거구 조정, 정치인 재산공개나 계좌추적, 정치 및 선거사범 처리 등에서 자기 편한 대로 법과 제도를 만들어 국민의 선택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거나 왜곡해온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오죽하면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의 선거요 정치’라고 혹평을 받을 정도이다. 그러한 오만과 자기 방만에 일대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젠 정치가 정치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관련 정책, 예산, 입법 등을 놓고 이해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시민단체나 전문가단체들이 참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과거처럼 이들이 정치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로만 머무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는 분명히 마감되었으며 다양한 합의와 수렴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설령 정당 정치라 해도 정치인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린 측면도 있다. 공직후보자 공천은 물론이고 전당대회나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 선정을 놓고서도 점차 공개화와 투명화를 높여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3. 이익단체 같은 정치성향 집단도 정치적 비중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이나 비민주적인 권위주의 정부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항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애쓴 장본인으로서 대학생과 노동자(노조)가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의 견제 역할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데다 대학 운동권이 거의 사라지고 노조도 한노총·민노총 양대 노초의 귀족 권력화로 인한 각종 정치·경제적 문제를 발생시키며 신뢰와 힘을 잃어가는 현실에서 그 내재적 한계로 인해 중요한 변수로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촛불집회를 주도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가고 문재인 정권을 출범시키는 역할 같은 도드라진 모습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대신에 현대사회가 복잡사회가 되면서 이익집단의 정치참여와 요구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 이전처럼 정치에 장악되어 돈이나 대고 인원동원이나 하던 그런 역할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일부 내부 인사의 정치적 야심으로 단체의 이익과 정치적 역량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젠 본격적으로 입법과 정책 과정에서 자기 이익을 관철해 나가려 애쓰고 있다. 특히 이들은 수만,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 회원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정치권에 힘이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익집단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압력은 물론이고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 추천, 선거운동 주도, 정치자금의 안정적인 공급원 등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정책토론회, 공청회, 간담회 등을 통해 끊임없는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 관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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