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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 및 이를 준용하는 가사소송 절차에서는 민사소송법 제202조에 따라 증거의 가치를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를 취하고 있어 형사소송법의 법리에 따른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상대방 동의 없이 증거를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민사·가사소송에서 증거 채택 여부의 문제는 법률로 정하지 않고 ‘법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얘기다. 그로 배우자의 불륜을 입증하기 위해 몰래 불법감청기기를 설치한 경우 불법감청 장치를 한 사람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받게 될 것임과는 별개로 ‘불법감청을 통해 녹음한 파일’ 그 자체는 ‘재판부의 판단’으로 민사·가사재판의 증거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불륜 통화 녹음 파일’이 증거능력이 있는지”가 쟁점이 된 가사(위자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스파이앱 녹음(불법감청을 통해 녹음한 파일)’에 대해 민사·가사 재판에서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그간의 민사(가사) 하급심의 판례를 뒤짚은 최신 판례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들여다보면, 배우자 몰래 설치한 ‘스파이앱 녹음 파일(불륜 통화 녹음 파일)’을 증거로 위자료(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가사재판에서 1·2심 모두 녹음 파일에 증거능력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한 행위는 전기통신의 감청에 해당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고, 불법감청에 의해 녹음된 전화 통화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대법원 1부 주심 김선수 대법관, 2024.5.19).
특히 이 판결에서는 ‘불법감청에 의하여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의 명문 규정을 적시(강조)한 것으로 보아, 증거의 가치를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민사소송법에서의 자유심증주의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명문 규정(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의 규정)이 있는 경우 그것이 자유심증주의에 우선 한다’는 점을 재차 확인한 판결로 풀이된다.
이쯤에서 위법수집증거의 민사(가사) 소송 절차 상 증거능력 유무를 연구·지도하는 탐정업무(민간조사업) 종사자 등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건(本件) 소송과 판결 과정을 소개해 본다.
아내 A씨와 남편 C씨는 2011년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았다. 의사였던 남편은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 B씨와 여러 차례 데이트를 즐기는 등 불륜을 맺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2019년 이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도 불륜 상대가 있었기에 곧바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이듬해 아내의 ‘맞바람’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부는 2021년 3월 합의 이혼했다.
이혼 다음해인 2022년 A씨는 남편이 아닌 상간녀 B씨를 상대로 ‘남편의 외도로 혼인 관계가 파탄 났다’며 남편 몰래 휴대전화에 설치한 ‘스파이앱’을 통해 확보한 통화 녹음 파일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고 33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제기한 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불륜 통화 녹음 파일)에 증거능력이 인정되는가?’의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이에 B씨는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통화 내용에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폈지만 1심과 2심 법원 모두 A씨가 제출한 ‘스파이앱 녹음 파일’을 증거로 채택해 A씨 손을 들어주며 ‘위자료 1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A씨가 청구한 3300만 원 중 일부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상 위법수집 증거의 증거능력 배제법칙이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가사소송 절차에서까지 적용되지 않는다’며, ‘증거 채택 여부의 문제는 법원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1부는 2024년 5월 19일 1·2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스파이앱 녹음 파일(불륜 통화 녹음 파일)’은 민사·가사소송 재판에서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시를 통해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한 행위는 전기통신의 감청에 해당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고, 불법감청에 의해 녹음된 전화 통화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음을 동법 제4조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불륜 통화 녹음(스파이앱 녹음 파일)’은 어떤 경우에도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문제가 된 통화 내용이 아닌 법원이 확보한 다른 증거로 B 씨의 부정행위는 인정된다고 보고 위자료 1000만 원 지급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필자/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한국범죄정보학회민간조사학술위원장,前경찰청치안정책평가위원,前국가기록원민간기록조사위원,한북신문논설위원,치안정보업무20년(1999’경감),경찰학개론강의10년/저서:탐정실무총람,탐정학술요론,탐정학술편람,탐정학,정보론,경찰학개론外/사회분야(국민안전·탐정업·탐정법·공인탐정明暗)등 600여편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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