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 정도 발전은 했을 것이라는 궤변

    현경병, 할말은 한다 / 시민일보 / 2023-02-15 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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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병 전 국회의원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잘사는 나라였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장충체육관 등을 비롯해 선진 건축기술로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세워주기도 했다.


    40여년이 흘렀다. 지금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저개발국으로 전락했다. 많은 여성들이 대학을 나왔어도 국내에는 일자리가 없어 홍콩이나 싱가폴로 가서 가정부가 되어 일하고 있다. 아들들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과 중동에서 온갖 차별과 설움에 시달리며 힘들게 일하며 살고 있다.


    그 원인을 뭐라 할 것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지도자로 있었기에 그리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필리핀은 마르코스가 1965년부터 집권한 이후 온 나라가 독재자인 그의 손안에서 좌지우지 되는 가운데 경제와 산업이 침체와 낙후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필리핀이 가지고 있던 그나마의 국부마저 마르코스와 그 일가들이 자신들의 지갑으로 집어 넣으면서 국민을 가난 속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7대, 더러는 5대 강국에 꼽혔던 잘나가던 나라였다. 그 전에는 별 탈 없이 성장궤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 후안 도밍고 페론이 대통령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꼈다. 인기를 얻기 위해 퍼주기에 열중하다가 나라와 민생을 파탄시키는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는 ‘페론주의’를 앞세워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현혹하면서 마구잡이로 쓰다가 가정은 물론이고 나라마저 몇 년 못 가 거덜나 버렸다.


    국민들은 당장 먹고살 것과 일자리조차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순식간에 가난한 나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페론의 집권 이후부터 유별난 공공 부문의 방만화와 과잉 사회복지 정책 속에 1958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에 20여차례나 구제금융을 신청해 오다가 지금도 상시적인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은 마냥 억울하고 그 탓을 정치 지도자에게만 돌리면 되는가. 필리핀과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그렇게 된 것의 책임을 놓고 마르코스와 페론을 아무리 탓해 봐야 소용이 없다. 사실 이러한 처지가 된 것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그 나라 국민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마르코스를 계속해서 지지했고, 페론이 1955년 군사쿠데타로 축출당한 후 그에 대한 미련을 보여 다시 국정을 장악한 채 또 대통령이 되게 만들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얼마든지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백제 의자왕과 고려 공민왕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의자왕은 집권 초기에 현명한 군주로 칭송받으며 백제를 부흥시켰다. 그러다가 미인계와 향락에 빠지고 국정의 난맥이 이어지면서 백제를 멸망시킨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공민왕은 몽골 제국(원나라)을 몰아내고 고려를 개혁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부인이 죽었다고 국정을 내팽개쳐버려 집권 후반 리더십을 잃어버리면서 고려를 멸망으로 몰아넣었고 그의 사후 겨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500년 고려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필리핀과 아르헨티니의 길을 가지 않았다. 대통령이 달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지도자가 등장해 국가 건설과 산업화를 주도했다. 그 와중에 장기집권, 군부독재, 인권탄압 같은 과오와 결함을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이루어낸 역사적 과업만은 위대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자주국가 대한민국을 철저히 고집했고, 그 원칙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나라의 기본체제로 확립했다. 박정희는 경제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강력한 지도력를 발휘해 보리고개의 가난을 극복하고 50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서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김영삼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정치 지도자들이 군사정권을 종식시키면서 완전한 민주화를 성취해 아시아에서는 일본 보다 더 앞서는 제1위의 민주국가로 올려놓았다. 현대사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우리와 비슷한 입장이었던 그 많은 나라들 중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내면서 선진국 대열에 완전히 진입한 나라는 한국 뿐이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2010년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에서 가장 예외적인 성공사례가 된 것이다.


    이따끔 국민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으로 있었더라도 우리나라가 이만한 발전을 했을 것이라거나 지도자가 누구든지 제도와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그 나라는 끄떡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위의 사례에서 보듯 명확하다. 사실 이러한 궤변을 말하는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지도자가 나와 같은 편이 아니라서 싫어하며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 시대를 운영했던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부정하는 일부 친북(종북) 좌파와 극우 세력들의 주장일 뿐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국민이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지도자가 엉망이면 그 나라는 금세 혼란과 몰락으로 빠져든다. 한 나라의 방향을 좌우하고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일은 결국 지도자들이 한다. 앞으로도 우리가 뽑아놓은 지도자에 따라 우리 자신의 미래까지 변할 것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도자가 잘못하면 언제든지 우리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고, 국민의 절대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해 기본적인 교육과 문화조차 향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겨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선택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그렇기에 대통령을 잘 선택해서 주어진 책무를 제대로 잘 수행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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