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현경병, 할말은 한다 / 시민일보 / 2023-01-31 14: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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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병 전 국회의원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 수준에 달려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주의에 바탕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정치 체제, 질서, 문화가 형성되고 발전해나가는 것인데,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로서 일반화 하고 있다. 한국 정치와 미래 역시 이러한 국면에 충실할 것을 추구하고 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전제로 인해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바로 국민을 절대선이라고만 바라보는 것이다. 결코 국민이라고 해서 무오류의 존재일 수는 없다. ‘국민은 위대하지만 유권자는 영악하고 대중은 어리석은’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수 대중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오는 재앙적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파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민주주의를 실현해 그 전범으로 여겨지는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주도하며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 클레온 같은 선동가에 휘말려 시민들이 열광하다가 내부의 타락과 혼란에 빠져들며 다른 폴리스(도시국가)들의 믿음을 잃은 채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아테네와 그리스는 다시는 이전의 영화를 되찾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인류문명에서 주목받은 적조차 없었다.


    로마가 왕정에서 출발해 그토록 어렵게 이룩한 공화정이 500년이나 존속하다가 카이사르의 등장 이후 독재정도 모자라 황제를 꿈꾸다가 암살당했다. 그를 추종하던 시민들이 분노에 찬 채 복수를 외치며 로마를 피로 물들였다. 그 과정에서 옥타비아누스가 패권을 잡으면서 로마는 공화정의 폐지로도 모자라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으로 넘어가 버렸다. 당시 그를 아우구스투스라는 첫 황제로 옹립하면서 누구보다 열광한 것은 바로 로마 시민들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로마를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전환시켜 제국화의 길로 가게 만든 것이다.


    유럽에서 근세의 서막을 열며 문명적으로 동양과 중양(지중해-중동)을 앞지른 최초의 시절로 자랑스러워 하는 르네상스를 꽃피우고 전성기를 누린 곳이 이탈리아의 피렌체였다. 당시 인구 2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이 작은 도시에서 인문주의자와 미술가들이 하도 많이 배출되어 그 이전과 이후 유럽 전체의 모든 유명한 학자와 화가들을 망라한 것보다 더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밤하늘의 별처럼 등장해 활약했다. ​그러다가 선동가인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나타나 피렌체의 학문과 미술을 저주하자, 당시 시민들은 그의 선동에 빠져 그토록 풍요롭고 아름답던 시절에 절망하며 서적과 미술품들을 불태우고 도시를 몰락시키면서 르네상스마저 끝장내버렸다.


    프랑스는 18세기 내내 일반 백성들이 열악한 상황에 시달리다 1789년에 결국 견디다 못한 파리 시민들이 앞장서서 혁명을 일으켰다. 프랑스혁명이 성공하자 군주제를 폐지하고 국왕 루이 16세 부부를 처형하면서 공화정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3년 만에 막을 내린 이후 극심한 국내외의 혼란을 겪으면서 나폴레옹이 전쟁 영웅으로 떠오르자, 프랑스인들은 이전의 왕정도 모자라 그가 황제로 등극하는 것을 열광적인 환호로 호응하며 제정 시대를 열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1921년 국가파시스트당을 창당해 의원으로 선출되었지만, 선거로는 자신의 뜻이 관철되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 1922년에 검은셔츠단을 앞세운 채 3일 간의 로마 진군을 벌이며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그의 권력 획득을 인정하는 한편 군부, 자본가, 우익의 지지가 뒤따랐다. 그렇지만 그가 집권할 때 가장 열광하면서 힘을 실어준 것은 그의 연설과 선전·선동에 빠져든 국민들이었다. 이후 이탈리아 국민들이 호응하는 가운데 전례 없는 광기에 찬 파시스트 정권을 자초하며 2차대전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독일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1차대전을 일으켰다가 패배한 이후 배상금과 실업 그리고 경제 침체로 고생하면서도 인류 역사상은 물론이고 근대를 대표하는 가장 민주적인 체제인 바이마르 공화국(1918~33)을 출범했다. 그러나 문제는 독일 국민이었다. 불만에 가득찬 채 비난하면서 외면했다. 그러다가 히틀러가 등장해 기괴한 연설로 선동하자 그에게 열광하며 유대인을 필두로 한 인종차별과 제3제국 건설의 망상에 젖어 유럽 전역은 물론이고 세계의 다수 지역을 전란으로 몰아갔다가 패전의 굴레를 뒤집어쓴 채 동·서독 분단과 외부 세력에 의한 분할 점령을 거쳐야 했다.


    이처럼 한 나라가 번영을 누리거나 국민주권을 보장받아 민주적일 때조차 다수 국민들이 우중화 하며 독재자와 절대권력의 등장을 갈구하면서 결국 그로 인해 선동에 너무 쉽게 빠져들어 역사의 물길마저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의 시절을 자초한 바가 적지 않다. 이러한 국면은 국민 스스로 반동의 역사로 되돌린 것이나 다름없다.​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으로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의 말이 와닿는다. “정말 위험한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이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국민을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존재는 국민 그 자신이다.” “국민은 언제라도 감성적으로 움직이기 쉽기 때문에 정말 위험할 수 있다. 느긋하고 차분해야 한다. 절대로 흥분해서 들뜨거나 열광하면 안된다. 우매한 대중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현대사 이후 피땀 흘리며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이루어냈다.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에 만족할 일은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개개인의 이성과 지력을 높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 전체의 집단지혜를 발휘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국민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최고·최선의 권능은 지도자를 고르는 일이다.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택할 때 만큼은 가장 먼저 현금 복지 포퓰리즘을 앞세우는 선동가형 인물을 가장 심각한 문제 인물로서 경계해야 한다. 그 다음엔 인품, 능력, 정책 공약의 3가지 가늠자를 놓고 살펴본 후 그 점수가 높은 인물을 골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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