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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세전쟁이 1년간 ‘휴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코스피(KOSPI)가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난 10월 27일 코스피는 지난 주말보다 2.57% 상승한 4,042.83을 기록했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 열풍을 틈타 호황 국면에 접어든 반도체 경기가 ‘불장(불붙은 장세)’에 기름을 부었다. 코스피는 연초 대비 70% 가까이 올라 세계 주요 증시 중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공급과 개인 투자 확대를 뜻하는 ‘동학개미 운동’으로 2021년 1월 3,000포인트를 넘어선 지 4년 9개월 만이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가 처음 10만 원을 넘어섰고 SK하이닉스는 50만 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코스닥(KOSDAQ) 역시 1년 6개월 만에 900선을 회복했다. 지난해 세계 주요 증시 중 최하위 수익률을 기록해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수모를 당했었지만, 올해 들어 반전 신화를 쓰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 1년 휴전 소식과 미국 연준(Fed) 기준금리 인하 흐름까지 투자심리를 부채질했다. 한국 증시가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꿈의 지수 5,000 시대도 머지않았다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를 새로 쓴 코스피 급등은 대내외 호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저금리 기조에 따른 시중 유동성 확대, 인공지능(AI) 수요확산으로 촉발된 반도체 경기 회복, 국내 주요 기업들의 견조한 실적,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맞물리며 주가를 강한 상승세로 밀어 올렸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 「상법」 개정안 등 주주권 강화 정책도 시장 심리를 크게 바꿔놓았다. 이사 충실의무 강화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기대가 커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것이다. 호재가 악재를 덮는 전형적인 강세장이다. 이를 계기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외국인 보유 비중은 34%에 이르렀고, 하반기에만 17조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도 1,100조 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AI 산업 활성화와 주주 보호 강화가 맞물린 긍정적 변화임은 분명하다.
여기에다 도화선에 불을 당긴 건 미국과 중국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오는 10월 30일 부산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와 관세 추가 부과 등 상대를 겨냥한 강경 조치를 자제하는 움직임이다. 양국 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 ‘허리펑(何立峰)’ 부총리를 만난 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 유예하고, 미국도 100% 추가 관세를 보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두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와 펜타닐 대응 강화, 틱톡 매각에도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최종 합의는 정상회담 때 확정되겠지만 양국이 상대를 겨냥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일단 거둬들이기로 한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또 “우리는 매우 폭넓은 의제들을 다뤘다”며 “목요일(30일) 한국에서 열릴 양국 정상회담을 위한 실질적인 ‘프레임워크(합의의 틀)’에 도달했다.”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도 10월 27일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시 주석을 매우 존경하고, 미중 협상이 합의에 이를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고 NBC방송이 전했다. 그는 “느낌이 좋다”고도 덧붙였다. 중국 측에서도 무역협상과 관련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서는 부침이 심했던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는 경우 증시 훈풍의 강도는 더 세질 것이다.
한국 증시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4,000고지에 오르는 신기원을 이룩한 건 반가운 일이지만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할 뿐만 아니라 복병도 즐비하다. 발등의 불은 한·미 관세 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조건을 수용하면 즉시 타결될 것”이라고 압박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대미 투자의 주요 쟁점들이 아직 교착상태”라고 했다. 이번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 증시가 급락세로 돌변하고 환율 불안도 심화할 수 있다. 실물경제 역시 나아질 기미가 없다. 수출은 반도체를 빼곤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올해 성장률도 0%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주력산업 역시 중국과 경쟁에서 밀려 뿌리째 흔들린다. 증시에서 최근 4개월 사이 하락 종목(1,537개)이 상승 종목(1,104개)을 433개나 웃돈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번 급등이 유동성에 기댄 반짝 장세에 그칠지 모른다는 방증(傍證)이다.
뜨거운 상승장일수록 냉정함이 필요하다. 최근의 상승세가 기업 실적이나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보다는 급격한 자금 유입에 기댄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연초 57조 원에서 최근 80조 원으로 23조 원(40%) 늘었고, 신용융자 잔고는 지난해 말 15조 8,000억 원에서 23조 원을 넘어 7조 2,000억 원(49%)가량 증가했다. ‘빚투’ 자금이 급증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엔 상승장에서 소외될까 두려워 무리하게 따라붙는 이른바 ‘포모(FOMO │ 기회 상실 우려)’ 심리도 한몫했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이다. 부동산 규제 강화로 시중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더해지면서 강세장의 열기를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물경제와 괴리된 주가 상승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미국의 관세 부과 여파로 수출이 둔화하는 등 경기 하방 요인이 늘고 있다. 국가 경제의 전체 성장세는 코스피 흐름과 정반대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0.9%, 내년에도 1.9%로 잠재성장률을 밑돌 전망이다. 특정 분야 수출에만 의지하고 내수가 만성 침체로 회복이 요원한 모양새다. 영세 자영업자와 한계기업의 부채 부담도 여전하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장기 원화 가치 하락과 자금 이탈은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이 늙어가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경제 ‘펀더멘털’이 받쳐주지 못한 상태에서 주가 급등은 ‘신기루(Mirage) 랠리’로 그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시가총액 증가분의 절반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차지한다. 반도체 의존도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전체 시가총액의 30%를 넘는다. 조선·방산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하락한 중·소형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급증하는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하거나 AI 거품론이 현실화하는 경우 외국인 자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급락의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신용융자 급증 등 과열 징후를 면밀하게 모니터링(Monitoring)을 하면서 시장 급변 상황에 선제적인 대비를 해야만 한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이 3,300조 원을 돌파했지만, 여전히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은 선진국 증시보다 낮다. 구조적 저평가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방증(傍證)이다. 이런 이유로 포트폴리오(Portfolio)에 반도체주를 담지 못한다. 과열된 유동성이 자극한 빚투 현상을 정상적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기업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는 산업 생태계와 생산성 기반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처럼 자본이 부동산 대신 증시로 모이는 ‘증권 자본주의’를 뿌리내릴 수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고질적 ‘부동산 불패’ 신화를 넘어서는 첩경이기도 하다.
여당은 “당정의 성과”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분위기지만 낙관론에 취할 때는 결단코 아니다. 코스피가 4,000선에 안착하고 5,000선을 향해 질주하는 ‘코리아 프리미엄(Korea premium)’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미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急先務)다. 정부는 간극(間隙)이 여전히 큰 한·미 관세 협상에 속도보다 실리가 중요함을 명심하고 끝까지 가용 국가역량을 총(總)동원해 국익에 부합하는 협상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할 것이다. 결국 주식시장은 실물경제의 거울이고 기업 경쟁력과 실적에 좌우된다.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로 기업이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 한다. 경제 체질을 튼튼히 하고 한계에 봉착한 산업의 구조조정과 개혁도 서둘러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에 나서야만 한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적 증권시장 상승 기대는 공염불(空念佛)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약속대로 부동산 일변도인 국내 투자 흐름을 증시로 되돌리려면, 지금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반도체·자동차 등 기존 전략산업뿐 아니라 방산·조선 등 기간산업 르네상스를 확고히 하고, K팝·K푸드·K뷰티 같은 새 수출산업도 키워야 한다. 주가는 장기적으로 기업 실적에 달려 있고, 기업 성장은 내수와 수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수의 한 축인 가계가 위태롭지 않아야 하고, 성장동력과 사회적 약자를 챙기는 국가 역할도 중요하다. 기업의 안정적 경영 환경이 외국인 장기 자금 유입의 전제 조건임을 각별유념해야 한다. 결국 기업 혁신과 성장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반기업·반시장 입법에 더욱더 신중(愼重)에 진중(鎭重)을 더하고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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