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

    현경병, 할말은 한다 / 시민일보 / 2023-02-21 14: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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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병 전 국회의원



    국민의힘 3·8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심’ 여부가 뜨겁게 다루어지며 ‘당정 분리’라는 정치권의 오랜 논쟁이 다시 한번 촉발되었다. 대통령실이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에 대해 정면 대응에 나서면서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 정당한 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당정 분리 위반이라는 비판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1호 당원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할 정도였다. 더러는 당정 일체, 명예 대표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원래 당정 분리가 제도화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였다. 2002년 당선 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 분리를 천명한 것이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도 2006년 당권·대권 분리를 공식화 했다. 이후 여·야를 대표하는 두 정당에서는 당헌·당규로 당정 분리를 규정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정당에 개입하지 못하게 되었고, 일반적인 인식 또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국정 운영에 전념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 정치에서는 당정 분리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국정의 뒷받침이 필요했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듯 공천과 당내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받아들였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따로인 당 따로 누가 책임지나. 책임 없는 정치가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놓고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다. 당정 분리도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당·정·청 일체’를 내세웠다. 우파 진영도 다를 바 없었다. 친이(親李·친이명박)·친박(親朴·친박근혜) 계로 분화된 가운데 대통령은 막후에서 공천과 전당대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 결과 18대 총선에서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20대 총선에서는 진박(眞朴·진짜 박근혜) 공천이 이루어졌다. 그 사이인 2014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박근혜 대통령이 친박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을 지원했지만, 거센 반발 속에 비박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이 당심과 민심을 모두 집결시키며 승리했다.


    사실 주요 정치 선진국들에서는 국정 운영 최고지도자의 정당 활동이 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영국을 비롯한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정당 대표가 선출되면 자동으로 총리에 취임하도록 되어 있고,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정당 활동을 벌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치 활동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 같은 오랜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공화당·민주당의 연방 상·하원 의원 후보 공천을 당원 등이 직접 뽑는 상향식 방식으로 진행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본선에서도 자신의 소속 정당 후보자에게 연설을 하거나 편지를 써주는 등의 방법을 통해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주도해 정당을 창립하고 자신의 참모와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들을 총선 전면에 내세워 사실상 대통령과 집권당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금의 집권당인 ‘대선 과반을 위해 함께(앙상블)’에 이르기까지 정당을 만들고 총선 공천을 주도하고 있다. ‘명예 당수’란 직책을 가진 채 당무에 일상적으로 관여하고 있기도 하다. 드골 이후 대통령이 당의 중심이란 정치 문화에도 큰 변화가 없다.


    역사적으로나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봐도 대통령이 국정 운영 차원에서 정당의 당무에 개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다만 우리 정치권은 오랜 보스 정치에 대한 반발로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과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당을 만들거나 대통령이 된 이후 정당을 만들기가 예사였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실(청와대)을, 국무총리를 통해 정부를 이끌어가며 정작 책임에서는 자유로운 위치를 유지했듯이, 비서실을 통해 정당을 장악한 채 정치를 주도했다. 3김 정치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가 정치 세력의 수장으로서 여러 정당을 만들고 이끌어갔다. 본인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당 총재를 겸임하며 확고한 권력을 잡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정당을 하위 조직으로 부속시켜 둔 것이다. 공천 등 모든 정치 과정을 좌지우지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당정 분리가 제도화 한 것이다. 대통령이 워낙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현실에서 정당은 그 아래로 휩쓸려들어가 좌지우지 되는 것을 막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특히 행정부 소속의 대통령이 입법부를 형성하는 주축인 정당까지 손에 넣고 움직이는 것은 3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당위론적 주장까지 더해졌다.


    그렇지만 현실은 여전히 대통령이 정당을 사실상 장악한 채 쥐락펴락 하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정당을 마음대로 움직여온 것도 여전했다. 앞에서는 당정 분리를 내세우지만 뒤에서는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정당에 개입하고 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주도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정당을 새로 만들거나 정당명을 바꾸는 일도 허다하다. 결국 당정 분리는 껍데기만 남은 채 정치 문화의 이중성을 조장할 뿐이었다. 이런 중에 대통령이 실컷 정무에 개입해 놓고 책임은 회피하는 현실도 책임 정치에 맞지 않는다. 한편 정당 역시 소속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당론 또는 당의 방침으로서 최대한 반영하고 이를 국회 등을 통해 현실화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민들도 대통령이 하는 당정 협의와 소속 정당 지도부와의 회동 등을 사실상 당연하게 여기는 상태에서 논란을 일으키거나 국민적 반감을 불러오면 비판받는 정도이다.


    현대 정치에서는 정당 정치를 최상위의 정치적 가치들 중 하나로 중시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정 운영을 하는 상황에서 정당과의 원활한 대화와 교류는 필수불가결하다. 오히려 대통령의 개입을 전면 허용하되, 하지 못할 사항에 대해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합당하다고 봐야 맞는다. 또한 대통령의 정당 개입을 불가피하게 허용하더라도 정당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치 문화의 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이 정당을 영속적인 가치 집단으로서 존중하고 국회를 포함해 국정 운영의 또 하나의 축으로 생각해야 선진 민주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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