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거버넌스] 용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서포터즈 제도 운영

    기획/시리즈 / 오왕석 기자 / 2025-05-27 17: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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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오왕석 기자] 지난 19일 아침 용인특례시 처인구 고림동 용인서울병원 장례식장엔 검정 옷을 입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용인특례시의 열한 번째 공영장례가 엄수되는 날이었다.

    장례식장엔 이미 윤상형 용인시사회복지협의회장과 김재빈 용인시니어해오름봉사단장 등이 새벽부터 나와 발인예배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빈소엔 간소하나마 제상이 차려졌고 고인의 영정도 안치돼 있었으나, 유족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열여덟 명의 공영장례 서포터즈들이 상주를 대신해 경건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었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윤상형 용인시사회복지협의회장(목사) 주재로 발인예배가 시작됐다. 예배에 앞서 서포터즈 중 한 사람이 영전에 술잔을 올렸다. 고인의 종교를 모르기에 기독교식 장례를 진행하기에 앞서 전통 방식으로 예를 갖추려는 배려였다.

    이어 서포터즈 모두가 잠시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라 장례 참여자 모두가 진심으로 고인을 위해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자는 의미에서다.

    예배를 집례한 윤상형 회장은 “오늘 이oo님의 장례를 모시기 위해 모였다. 우리 모두 고인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이 세상을 함께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각자 마음을 담아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재빈 용인시니어해오름봉사단장은 기도를 통해 “오늘 이oo님의 영혼을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려고 이 자리에 왔다”며 “이oo님의 영혼을 위로하고 하나님 품 안에서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발인예배는 30분이 넘게 진행됐고, 고인은 전 서포터즈가 도열한 가운데 용인평온의숲으로 떠났다.

    18명의 서포터즈들은 이날 용인평온의숲에서 화장과 봉안이 끝날 때까지 고인의 곁을 지키며 마지막 배웅을 했다.

    이들은 전날에도 새벽 5시부터 기흥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공영장례를 치르는 등 이틀 연속으로 외로운 고인들을 예우를 갖춰 보냈다.

    용인시 공영장례 서포터즈 제도 운영.. 예를 다해 고인 존엄 지켜


    용인에선 이처럼 가족도 지인도 없는 고인들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격식을 갖춰 장례를 치르고 있다.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없는 시신에 대해 지자체가 빈소조차 마련하지 않고 화장 처리하던 공영장례에 올해부터 시가 공영장례 서포터즈 제도를 운영해 예를 다해 고인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윤상형 회장은 “최근 가족관계가 단절됐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경제적 이유로 망자의 시신 인수를 거절하는 무연고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어 용인에서만 올해 100회 정도의 공영장례가 진행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용인의 공영장례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지자체를 넘어 시민단체들이 장례를 주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장례에 참석한 김재빈 용인시니어해오름봉사단장은 용인평온의숲으로 향하는 발인 행렬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엔 단순한 노인일자리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귀중하고 소중한 가족이었을 분들이 이렇게 혼자 가시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무연고가 될 수 있다"며 "나의 가족, 나의 지인도 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마음을 다해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홀로 사는 어르신의 제3의 가족...타 지역서도 정책 벤치마킹 잇따라

    용인특례시가 도입한 공영장례서포터즈 제도는 벌써 타 지역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노인일자리 사업과 공영장례를 연계한 이 혁신적 모델에 대한 벤치마킹 문의가 여러 지자체에서 들어오고 있다.

    공영장례서포터즈는 가​족해체와 빈곤, 무연고 등의 이유로 가족과 왕래가 없는 노인들이 급증하면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급증하는 가운데 무연고 사망자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이상일 시장과 용인시의 강한 의지가 결실을 맺어 출범했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고령화와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망자의 시신 인수를 거부해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고인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드리려고 공영장례 서비스 제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같은 해 9월 ‘용인시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관련 예산을 마련한 뒤 지난해 1월 시내 6개 장례식장과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 지원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시는 장례를 위한 빈소 마련과 추모의식, 화장 등의 진행을 위해 최대 160만 원의 장례 비용 등 지난 한 해 동안 총 63건의 공영장례 서비스를 지원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경기도 내 다른 시군에서도 이 제도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무연고 사망자 증가는 전국적 현상이라 이런 관심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가족형태 변화로 무연고 사망자 급증

    실제로 경기도 내 무연고 사망자는 최근 5년간 급격히 증가했다. 2020년 684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24년 1,186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5년간 총 4,935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해, 하루 평균 2.7명꼴로 연고자 없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현실이다.

    무연고 사망자 급증의 주된 원인은 가족 형태의 변화다. 과거 3세대 동거가 상식이었지만 이제 핵가족화를 거쳐, 1인 가구가 대세인 '독신 시대'로 접어들었다. 가족이 있어도 '인수 거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래서 공영장례서포터즈들의 활동은 단순히 장례를 치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관내 사회복지시설과 취약계층 가정을 방문해 대상자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공영장례에 대해 상담하며 고독사 예방에도 나서고 있다.

    김 단장은 "소외된 어르신을 찾아갔다가 함께 울었던 적도 있다"며 "하루 한 끼 배달 도시락만으로 연명하는 분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사다 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포터즈들은 또한 웰다잉 서비스 연계, 생전 모습을 담은 웰다잉레코드 작업까지 진행하며 배우자도 가족도 없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제3의 가족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무연고 사망자를 지자체에서만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며 "국가적인 문제로 대응해야 할 사항"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연사회에서 유연사회로...국가적 지원 절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각 지자체마다 무연고 사망자 업무 담당 인력이 1명에 불과하고, 다른 복지 업무와 겸하고 있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용인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 업무 외에도 다른 복지 업무를 함께 맡고 있어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현장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예산 문제도 만만치 않다. 현재 용인시는 건당 최대 160만 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장례비용과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연말에는 예산이 다 소진돼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가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용인시의 공영장례는 행정과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용인문화예술원에서 열린 '공영장례 서비스와 고독사 예방적 돌봄정책' 학술세미나에는 130여 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세미나에서 임승희 신한대 교수는 "죽음을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공영장례는 복지의 마지막 단계이자, 사회적 연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으며, 김민석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공영장례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참여로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시로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가치 있는 일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어르신 가계에 보탬이 될 일자리까지 제공하니 일석이조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일 시장은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무연고 사망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시대에 용인시가 전국에서 시행하는 공영장례 서포터즈는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어르신들에게 가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복지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용인특례시는 어르신이나 장애인 등 사회 소외계층이나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선도적인 정책을 다수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공영장례 서포터즈 제도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시의 정책을 돌아가신 분들에게까지 확대해 적용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용인평온의숲에서 고인의 마지막 배웅을 마친 서포터즈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겠다는 다짐이 서려 있었다.

    무연사회에서 유연사회로, 용인특례시 공영장례서포터즈들의 따뜻한 동행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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