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銃대 멘 젊은 ‘괸당'들
고향에 돌아온 지 5일 후인 1945년 9월20일에 그들은 처음으로 외출을 했다. 세불곳(三佛串)포구 근처의 ‘세불바위’ 구경도 하고, ‘자리돔’도 사고, 포섭공작도 펴고…다목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그들은 점심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자전거를 타고 세불곶 포구로 내달렸다. 두 사람의 눈은 바다 쪽으로 쏠렸다.
10여년전의 세불곶 풍경엔 눈곱만큼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 당시에도 그랬듯이 바다 위에는 흩뿌려진 낙엽모양, 크고 작은 어선들이 떠다니며 ‘자리돔’ 건져 올리느라 불꽃튀는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해안선 3백m 안팎에서는 해녀들이 보물찾기 게임을 벌이고 있기라도 함인 듯, 무자맥질하며 전복 따느라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고…. 두 사람은 어버이뻘-형제자매뻘 어부와 해녀들이 이를 악물고 개척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장하고도 비통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은 숙연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자, 형님! 저걸 보세요. 벌써 포구에는 자리돔을 사러온 사람들로 왁작지껄 시장바닥을 이루고 있잖아요. 아직 태우(자리돔 잡는 배)가 입항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터인데…. 형님! 우리 세불바위에 올라가서 ‘호연지기’나 펴기로 할까요?”
조용석이 포구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앞장선 고정관의 옷소매를 쫑긋 끌어당기며 잠꼬대하듯 뚱딴지같은 소리를 터뜨렸다.
“뭐야? 자네 지금 정신이 있나 없나? 어디를 올라가? 세불바위에…?”
고정관이 정색을 하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꾸짖듯 되물었다. 그러나 조용석은 코웃음만 칠 뿐, 짓궂은 장난꾸러기처럼 뉘우치긴 커녕 눈썹하나 까딱 않는다.
“자네, 벌써 잊었어? 영재의숙(英材義塾) 당시 소풍 와서, 나와 자네가 세불바위 중턱(약 20m)까지 올라갔다가 숙장(塾長)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 들었던 일, 나는 잊지 않고 있는데…”
“저도 잊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10여년전의 일 아닙니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낡아빠진 토속신앙을 형님은 지금도 믿고 있나요?”
“아니야, 세불바위는 우리 한남마을의수호신이라고. 서낭당보다도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다니까. 세불바위 얕보고 불경한 마음으로 바다에 나갔다하면 어부는 생선 한 마리 낚아 올리지 못하고, 해녀는 전복하나 못 따고 빈손으로 돌아온다잖아. 심한 경우엔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하구.
그래서 두 얼굴의 바위가 세불바위라는게야. 세불곶은 세상을 하직하는 세별포(世別浦)로 둔갑해서, 무서운 조화를 부린다는 속설이 아직 소멸되지 않았어”
“그거 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라구요. 저는 오늘 모험 한번 해볼까해요. ‘배짱’을 시험 해보고 싶어요. 꼭대기에까지 올라갈 거란 말예요”
“꼭대기에까지…? 모, 모험을…?”
“아니, 도전이지요. 한번 죽지 두 번 죽으려고요?”
“뭐? 도전을…? 도전이라면 내가 빠질 수 없지. 그럼 내가 먼저 올라갈테니 자네는 뒤따라 올라오게"
“아니지요. 제가 먼저 제안했으니까 제가 선수를 치는게 옳은 일 아니겠어요?”
누가 붙잡을까봐 조용석은 뺑소니치듯 뛰쳐나가 세불바위 위로 엉금엉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고향에 돌아온 지 5일 후인 1945년 9월20일에 그들은 처음으로 외출을 했다. 세불곳(三佛串)포구 근처의 ‘세불바위’ 구경도 하고, ‘자리돔’도 사고, 포섭공작도 펴고…다목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그들은 점심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자전거를 타고 세불곶 포구로 내달렸다. 두 사람의 눈은 바다 쪽으로 쏠렸다.
10여년전의 세불곶 풍경엔 눈곱만큼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 당시에도 그랬듯이 바다 위에는 흩뿌려진 낙엽모양, 크고 작은 어선들이 떠다니며 ‘자리돔’ 건져 올리느라 불꽃튀는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해안선 3백m 안팎에서는 해녀들이 보물찾기 게임을 벌이고 있기라도 함인 듯, 무자맥질하며 전복 따느라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고…. 두 사람은 어버이뻘-형제자매뻘 어부와 해녀들이 이를 악물고 개척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장하고도 비통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은 숙연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자, 형님! 저걸 보세요. 벌써 포구에는 자리돔을 사러온 사람들로 왁작지껄 시장바닥을 이루고 있잖아요. 아직 태우(자리돔 잡는 배)가 입항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터인데…. 형님! 우리 세불바위에 올라가서 ‘호연지기’나 펴기로 할까요?”
조용석이 포구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앞장선 고정관의 옷소매를 쫑긋 끌어당기며 잠꼬대하듯 뚱딴지같은 소리를 터뜨렸다.
“뭐야? 자네 지금 정신이 있나 없나? 어디를 올라가? 세불바위에…?”
고정관이 정색을 하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꾸짖듯 되물었다. 그러나 조용석은 코웃음만 칠 뿐, 짓궂은 장난꾸러기처럼 뉘우치긴 커녕 눈썹하나 까딱 않는다.
“자네, 벌써 잊었어? 영재의숙(英材義塾) 당시 소풍 와서, 나와 자네가 세불바위 중턱(약 20m)까지 올라갔다가 숙장(塾長)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 들었던 일, 나는 잊지 않고 있는데…”
“저도 잊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10여년전의 일 아닙니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낡아빠진 토속신앙을 형님은 지금도 믿고 있나요?”
“아니야, 세불바위는 우리 한남마을의수호신이라고. 서낭당보다도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다니까. 세불바위 얕보고 불경한 마음으로 바다에 나갔다하면 어부는 생선 한 마리 낚아 올리지 못하고, 해녀는 전복하나 못 따고 빈손으로 돌아온다잖아. 심한 경우엔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하구.
그래서 두 얼굴의 바위가 세불바위라는게야. 세불곶은 세상을 하직하는 세별포(世別浦)로 둔갑해서, 무서운 조화를 부린다는 속설이 아직 소멸되지 않았어”
“그거 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라구요. 저는 오늘 모험 한번 해볼까해요. ‘배짱’을 시험 해보고 싶어요. 꼭대기에까지 올라갈 거란 말예요”
“꼭대기에까지…? 모, 모험을…?”
“아니, 도전이지요. 한번 죽지 두 번 죽으려고요?”
“뭐? 도전을…? 도전이라면 내가 빠질 수 없지. 그럼 내가 먼저 올라갈테니 자네는 뒤따라 올라오게"
“아니지요. 제가 먼저 제안했으니까 제가 선수를 치는게 옳은 일 아니겠어요?”
누가 붙잡을까봐 조용석은 뺑소니치듯 뛰쳐나가 세불바위 위로 엉금엉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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