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칼럼 / 시민일보 / 2003-06-18 18: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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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6) 웅변왕, 그 공포의 입
    도대체 이게 꿈이냐 생시냐? 고정관과 조용석은 난생 처음 겪은 참담한 사건 앞에 아연실색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땅을 치고 통곡이라도 할 것처럼, 눈에는 뜨거운 눈물방울이 그렁그렁했다. 어머니에 대한 불효와 괴한들에 대한 분노가 뒤엉켜 괸 복합적인 눈물이었다. 10만명 아니 1백만명의 청중을 쥐락펴락 사자후를 터뜨려온 천하의 웅변왕들이지만, 때아닌 한밤의 참극 앞에서는 맥을 출 수가 없었다.

    “땅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범인들을 붙잡고야 말겠습니다. 이 아픔 이 모욕 그리고 억울함과 분함에 대해 열배 백배 보상을 받고야 말겠습니다. 못난 자식 때문에 어머니께서 엄청난 참변을 당하셨으니, 목숨을 걸고 보복하고야 말겠습니다.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고정관이 울먹거리며 넋두리를 했다.

    “이건… 괴한들이 어머님들을 괴롭히기 위해 천벌 받을 짓을,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저지른게 아닙니다. 형님과 제가 고향에 돌아오니가 죽이고 싶도록 배가 아파서 저지른, 정신병환자의 짓이 틀림 없다구요.

    3명의 괴한, 그치들은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그치들을 배후에서 조종한 우두머리는 우리 두 사람을 고향에서 내지 않으면 자신들의 설 땅이 없다고 판단한 끝에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우리 손으로 붙잡아 갔고 어머님들 앞에서 죄값을 치르도록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두고보십시오!”

    조용석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놈들 흥분하고 있구나. 놈들은 칼을 품었어. 이 동생과 내가 죽은 시늉을 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반항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게다. 일본군인들이 제주땅을 뒤덮었어도 이런 일 없었는데…. 아직은 시작이야.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친다니까”

    고정관의 어머니 윤여인의 움푹 파인 눈에도 눈물이 괴어 있었다.

    40대 중반으로 ‘물질’이 직업인 그녀의 얼굴엔 광대뼈가 우뚝 솟았어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마사이족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까맣게 그을었어도, 윤곽만은 끌밋하고 갸름한 주부형이었다.

    전복과 소라를 따던 공격적인 솜씨와 들끓는 정복욕으로 악독한 납치범을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투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오달진 모습이었다.

    “내 손으로 바위틈에 숨은 전복 떼어내듯 놈들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뎅겅 잘라 버리고 말 거야 너희들은 어머니들게 맡기면 돼. 앞길이 9만리 같은 너희들은 말이다 너희들의 할 일에만 열중하면 되는 게야.

    너희들이 칼잡이를 당해낼 수 있겠냐? 이번 일은 우리 여장부들에게 일임하고 잊어버려라! 우리가 알아서 죽이든 살리든 요리를 할 테니까. 안 그러냐 동생!”

    윤여인은 스스로 여장부임을 호언장담 하면서 젖먹이 다루듯 두아들들에게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두말하면 잔소립주. 성님 하랭하는대로 따르쿠다. 조금이라도 힘은 이 동생이 더 세니까 악종노릇 하는덴. 아미영허여도 내가 한 수 위면 위지 성님보다 못 할 건 하나도 없덴허나! 너희들은 성님 말씀대로 너희들 할 일에만 열중하는 게다. 쓸데없는 짓 하지말구…”

    40대초반인 고여인-조용석의 어머니인 그녀 역시 평생직업이 ‘물질’인 탓인지, 그리고 외가쪽으로 윤여인과 ‘괸당’이 되기도 하지만 얼굴빛이 마사이족과 다를 바 없기로는 윤여인과 피장파장이었다. 험상궂고 오달지긴 한 수 위였고….

    “잘 알았수다. 우리의 두 어머니는 한남마을에서 제 1가는 여장부 틀림없다니까. 저희들은 어머님들만 믿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고향을 떠나라니 말이 됩니까?

    그치들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강아지가 아니라구요. 하지만 형님! 우리가 그냥 무사태평으로 지낼 수 는 없는 일 아닙니까? 당장 작전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언제 눈물을 글썽거렸더냐 싶게 두사람의 얼굴은 환히 밝아졌고, 승리감을 다지는 결연함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그냥 묵과할 수 없어. 반격을 하자구!”

    고정관은 ‘눈에는 눈’ 식으로 공격태세를 갖추어야 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결연함과 비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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