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칼럼 / 차재호 / 2009-05-07 17:47:00
    • 카카오톡 보내기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부친의 스승이시기도 한 풍속화가 김학수님 별세 소식으로 하루를 열었다.
    아침 일찍 그 소식을 전하시는 부친의 음성은 그 어느 때보다 침통했다. 가까이 모시던 분이라 충격이 크신 것 같았다. 작년 구순 잔치를 모실 때만해도 넘치는 열정으로 노익장을 보이신 고인에게 모두들 틀림없이 100세 넘게 사실 거라고 입을 모았던 지라 갑작스런 타계 소식은 의외였다. 실제로 고인은 경민학원에 자신의 작품 200여점을 기증하시고도 학생들을 위해 몇 작품 더 그려야겠다며 왕성한 의욕을 보일만큼 건강한 모습이셨다. 생사에 관한 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가족이 따로 없으신 고인을 경민학원장으로 모시기로 결정했지만 고인을 보내는 아쉬움까지 달래지는 건 아니었다. 날마다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만으로도 하루가 빽빽하다. 크고 작은 사건마다 처해진 입장에 따라 시각도 제각각이다. 모순되거나 부합되거나 일리가 있거나 말이 안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만일 황희정승이 오늘 날을 살게 된다면 이런 백가쟁명 시대에(지금은 만가쟁명으로 바꿔야할 지경) 여전히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모두가 옳다는 식으로 중용의 도를 고수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어제만 해도 삼성 이건희 회장의 한밤중 ‘나 홀로 레이싱’ 보도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열다섯 대의 레이싱 카 사진이 들어간 재벌의 취미생활 소식은 타이틀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가 되는 거겠지.
    김지하 시인의 새로운 시집 출간 소식도 있었다. 특히 이십대의 막내 아들로부터 시 좀 어렵게 쓰지 말라는 충고를 듣고 시에 대한 엄숙함을 버리고 시장 바닥의 시끄러운 소리를 닮은 시를 쓰게 됐다는 김시인의 고백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밖에도 실직자들의 고뇌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 7만여명에 이르는 시간강사 문제와 김연아에게 고대정신을 불어넣어 키웠고 기여입학제를 환영한다는 이기수 고려대 총장의 발언, 노무현 전대통령이 인터넷을 중단했다는 소식, 검찰청의 국세청 압수수색, 그리고 한나라당의 계파 간 갈등과 이를 수습하기 위한 모색, 4대운하 기공식에 대한 추미애 의원의 맹비난과 여론을 소개한 기사가 관심을 끌었다.
    개인적으로도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행사 준비, 새로 시작한 중국어 발음연습, 밀린 결재 거리를 비롯한 수많은 일들이 나를 거쳐 처리됐다.
    수십 종의 신문과 잡지, 국내 방송과 CNN BBC 등 외신까지 그야말로 물밀듯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더듬거리는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함 뿐 아니라 엄청나게 고달픈 인생을 살게 했다.
    핸드폰 하나만 봐도 입증되는 얘기다. 내 경우 하루 통화 횟수가 100회 이상을 넘기고도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전화통에 매달려 뭔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핸드폰 없는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면 잠시 멎어버린 컴퓨터처럼 깜깜해지는 게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달프게 돌아가는 일상 덕에 우리는 너나없이 ‘정신없다’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인생에 대한 로드맵 설정은 필수 요소가 되는 것 같다. 다소 무리가 있고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 있더라도 스스로가 만든 이론과 철학의 토대 위에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일단은 자기 삶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으로 삶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들쭉날쭉한 인생사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매년 로드맵 증보판을 내더라도 인생설계를 통해 자기 삶의 통제 수단을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로드맵 없이 즉흥적 대응만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모의 극치다.
    특히 그동안 사회적 관습에 치여 등한시 됐던 디테일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할 필요성이 절감된다. 실제로 온 세계가 디테일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
    디테일이란 크고 화려한 것에 주목하기보다 현재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갖고 세심한 관리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걸 의미한다. 잭 웰치, 피터 드러커, 저우언라이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리더들이 이 디테일에 주목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기업간의 경쟁에서 제품은 단지 전제조건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 제품을 다루는 관리기술에서 승패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하는 평범한 출발이 디테일 마인드다.
    지점이 생기는 곳마다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발길로 거액의 매출을 올리고 중국 맥도널드의 성공도 디테일 경영의 결과다. 560쪽에 달하는 맥도널드의 작업 매뉴얼 하나만으로도 맥도널드의 디테일 마인드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될 것이다. 그 누구라도 이 매뉴얼만 있으면 햄버거 만드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 하니 두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회는 그동안 사회적 관습의 영향으로 디테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져왔던 게 사실이다.
    우선 당장 내 경우만 해도 디테일에 강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대범해야 한다고 훈육하신 어머님 말씀에 따라 사물에 세세한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 자체를 경원시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님의 훌륭한 가르침 중 그 근본 뜻만 흡수하고 나머지 부분은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방심하다가 천문학적인 속도로 누적되는 사건과 정보의 홍수 속에 자칫 인생을 익사시키는 어이없는 사태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우리 모두 지금부터 깨알같은 자기 로드맵 그리는 일부터 시작하자.
    깨알같은 로드맵만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설사 길을 잃는다 할지라도 쉽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차재호 차재호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