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 미술품 마진은 정당한가

    문화 / 김유진 / 2010-01-13 17: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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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작가·미술칼럼니스트)
    (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작가의 활동성과 작품 가격

    “마진 없이 드립니다.”

    “노마진 세일.”

    “팔아도 남는 게 없어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남는 게 없다면 물건을 팔 수 없다.

    그러나 화랑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다.

    정말 남는 것이 없어도 팔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에는 내가 아는 어느 흥행성 높은 작가는 1년에 20회 이상의 전시를 했다.

    인기도 좋았다. 작품을 구매하려고 작가의 작업실에 들렀는데 작품이 없었다.

    다 팔렸단다.

    선불 주고 10점을 구매할 수 있었다.

    작품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작가의 미래에 희망을 걸었다.

    그 후 5년 정도 이 작가의 작품 활동과 작품 매매 상황이 활발해 4점을 팔 수 있었다.

    200만원에 구입하여 250만원에 팔았으니 200만원의 마진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작품 성향에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작가에게 치명적인 일이었다.

    찾는 고객이 점점 줄어들었다.

    개인적 사정이 있었는지 몰라도 2년 정도 전혀 활동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면 작품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결국 그 작가의 나머지 작품들은 악성 재고로 남았다.

    당시에 구입한 가격으로 누군가 사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팔고 싶다.

    6점을 한꺼번에 산다면 200만원 손해보고 1000만원에라도 팔고 싶다.

    일반 상품이라면 이건 무지막지한 악성 재고임에 틀림없다.

    다행인 것은 그 화가가 최근 들어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대중 스타들이나 스포츠 스타들은 최고 인기가 있을 때 몸값을 무한정 걷어 들여야 한다고 한다.

    한번 시들어버린 인기는 회복하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인기가 있을 때 지속적으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변신을 거듭해야 한다.

    하나의 이미지로서는 대중의 입맛을 당길 수 없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구름 작가, 하늘 작가, 산 작가, 파도 작가라는 식의 고정된 이미지로도 마케팅이 가능했다.

    미술시장이 아주 좁았기 때문에 변화를 가진다는 것은 오히려 모험이었다.

    변화를 꾀하다 실패한 화가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면 변해야 한다.

    작고 작가들은 물론 변화가 필요없다(변화할 수도 없지만).


    무너지면 안 될 시장의 가격 기능

    시장에 유통되는 300만원 이하의 미술품들은 좀 다른 면이 있다.

    모든 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숨길 만한 부분이 별로 없다.

    그러니 턱없는 마진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전시 경비라는 것도 뻔하다.

    전시회는 개최하는 방법에 따라 비용은 확연히 달라지지만 말이다.

    최고급 전시회를 열고 싶다면 경비가 엄청나게 들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처음 전시를 개최하는 입장이라면 임대료, 화집, 홍보비, 액자 등을 합산해 500~700만원 정도 소요된다.

    무명이기 때문에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한 번 전시회를 가질 때 대략 20~30점이 걸리는데 그중에서 잘해야 4~6점이 팔린다.

    500~600만원 정도의 액수다.

    일반 상품일 경우에는 비용이 거의 충당되었으므로 그 나머지는 팔릴 때마다 이익으로 남는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그러면 그림 한 점에 남기는 마진이 엄청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작가 한 사람만 놓고 보면 그러한 계산이 가능할 법도 하다.

    그러나 화랑에서 그 비용을 집행하였을 경우에는 결과가 달라진다.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미술품은 전시 후 작가가 회수하여 가져가고, 팔린 미술품의 대금은 화랑과 화가가 5:5로 나누는 게 보통이다.

    화랑은 힘 하나 안들이고 공간만 빌려주면서 50%를 가져간다고 볼 수도 있다.

    오해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런 발상을 하는 구매자도 있다.

    “사실 화랑에서 그림을 사기가 참 망설여져요. 제가 친하게 지내는 화가 선생님 전시회에서 작품을 사주는 것은 인사치레도 되고, 선생님을 도와드리고 싶기도 하고 해서 사거든요. 그런데 초대전이라고 하면 화랑 마진이 50%나 되잖아요. 그래서 그 돈을 화랑에게 주느니 그냥 선생님 화실에서 직접 작품을 사려고 해요.”

    그러나 직접 매매가 이뤄지면 시장은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안돼요. 그건 화가 선생님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이런 사실이 소문나면 그 화가는 다른 화랑에서 절대로 초대해주지 않거든요. 그것도 문제지만 미술시장에서 작품 가격이 2중으로 형성되면 정상적인 거래가 어려워져요. 장기적으로는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끼치는 겁니다.”

    화랑이라고 그저 날로 먹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다.

    “말도 마세요. 요즘 젊은 화가들도 얼마나 약은데요. 원로들이야 20% 마진이고, 인기작가들 작품이 30% 정도의 마진인 거 아시죠? 고객이 와서 깎아달라고 하면 정말 남는 거 없어요. 그래도 원로들은 가격이 높으니까 상관없지만, 젊은 작가야 그런가요. 초대전 해준다고 하면 화집 페이지 수량까지 간섭해요. 간단하게 접지나 8페이지 정도 할라치면 최소 24페이지는 해달라고 하거든요. 마진도 그래요. 깎아주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가격에 팔든지 자기가 받을 50%는 깎지 말고 정한 대로 달라고 해요. 화랑만 손해를 보라는 거죠. 융통성 있게 서로가 조금씩만 밑지면 좋은데 어디 그런가요.”

    젊은 작가들만 초대하는 화랑의 말이다.

    작품이 200만원에 팔리면 화랑은 절반인 100만원씩을 화가와 배분한다.

    그러나 작품 가격도 형성되지 않았고 인지도도 별로인 젊은 화가의 작품은 160만원에 팔수도 있다.

    그랬을 때 화랑은 화가가 80만원을 받아가길 원한다.

    화가는 물론 100만원을 받겠다는 것이다.

    권치규의 ‘잠재적 욕망’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처한 운명이나 현실보다 더 나은 이상을 향한 잠재된 욕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복잡한 현실 문제로 부터의 해방, 삶의 고뇌로부터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현대인의 공통된 욕망을 직접적 또는 은유적 표현으로 표출한다.

    흙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한 후 거푸집을 만들어 주조한 청동 브론즈로 현대인의 긴장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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