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일보] 전국의 변호사들과 법학교수들이 11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불법 부정으로 점철되는 투표’로 규정하고, ‘투표 거부’를 선언했다.
이날 오전 11시 김도균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103명의 법학교수들과 강신하 변호사 등 113명의 전국 변호사들은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불법과 부정으로 점철된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현재 우리 민주주의는 유례없는 도전을 맞고 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그 추한 서명인 명부를 전시하며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80만 서울시민’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시장의 주민투표 발의는 우리 헌법에 대한 모욕이며, 인권에 대한 경멸이며, 법치주의의 유린이며, 민주주의의 찬탈”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또 “아이들이 급식을 받기 전에 ‘가난의 인증’을 먼저 받기를 강요하는 것은 비정한 일이며, ‘무상급식=부자급식’, 혹은 ‘무상급식=세금급식’이라고 선전하는 일은 아이들 가슴에 선을 긋고 낙인을 찍는 잔인한 일”이라며 “아이들이 배움의 공동체와 공통의 학교생활을 통하여 사회적 삶의 근원적 경험, 즉 우정과 환대라는 인간적 가치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공정한 협력체계로서의 우리 사회의 미래는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무교육의 급식은 기본급식이며 공통급식이지, 불쌍한 이들에게 베푸는 무료급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오 시장이 주민투표를 사실상 추진한 것에 대해 “일단 확정된 조례를 주민투표를 통하여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라며 “하지만, 이는 조례의 효력은 대법원에 제소함으로써만 다툴 수 있게 한 지방자치법과 재판 중인 사항에 대하여는 주민투표를 금지한 주민투표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주민청구에 의한 주민투표의 경우 공정한 관리자가 되어야 할 시장이 사실상 주민투표를 선동하고 지휘하였으니 이는 주민투표제도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시의 전산조회만으로도 32%의 서명이 무효로 판독되었고, 짧은 시일 동안의 부분적 열람에서 13만 4천 여 건의 불법무효 서명이 발견되었다면, 이번 서명 명부는 마땅히 전수조사를 했어야 한다. 만약 전수조사를 회피하기 위하여 80만명이라는 대규모 서명을 작출한 것이라면, 그 청구 행위 자체가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불법적인 의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 주민투표는 수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서울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명수만 채웠으니 됐다는 식으로 수리하였으니, 이는 확인의무를 다하지 않고 위법한 청구를 도운 불법적 행정작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이번 서명 작업은 법령에서 정한 양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청구인 대표자의 의사가 전달될 수 있게 하고, 서명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불법 대리 서명을 방지하고, 검증 및 확인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을 모두 회피한 것”이라며 “주민투표 청구행위는 그러한 법정 양식에 의할 때 비로소 법적 효과가 생기는 것이라고 할 때, 그 서명들은 법적 요건을 결여하여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경우에도 ‘문제없음’이라고 판정해 주었으니, 이 역시 법치행정이 아니라 불법행정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주민투표의 청구대상 혹은 청구취지는 계속하여 변경되어 그 실체를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시가 처음에 청구인대표자증명서를 교부하고 그 사실을 공표할 당시에는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라고 하였는데, 이후 서명작업 및 청구사실 공표에서는 ‘소득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과 소득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2011년), 중학교(2012년)에서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 중 선택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다시 최종 주민투표 발의 공고에서는 그 선택지 앞에 ‘무상급식의 지원범위에 관하여’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투표였다가, 두 번 째에는 무상급식의 ‘방안’에 대한 선택투표였다가, 세 번 째에는 무상급식의 ‘지원 범위’에 대한 투표로 변신해 간 것”이라면서 “이와 같은 청구대상 혹은 청구취지의 변화는 주민투표의 법적 효과를 모호하게 만들어, 주민투표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능임을 시사한다. 청구인들의 의사와 서명인의 의사가 다르고, 서명인의 의사와 투표인들의 의사가 다르고, 투표인들은 서로 다른 대상을 생각하며 투표를 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들은 “이러한 중대한 변경이 어떤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은근슬쩍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며 “이번 주민투표는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서울시와 청구인 대표자의 부정담합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성명서는 “선택형의 경우도 적법한 주민투표로 성립할 수 없다. 그것이 무상급식의 ‘방안’에 대한 선택형 투표라면, 학교급식의 주무관청은 서울시가 아니라 서울교육청이고, 교육에 관한 사무에서는 교육장이 지자체의 장을 대신한다고 할 때, 서울시장이 이번 주민투표를 발의한 것은 적법한 발의자에 의한 주민투표가 아니다”라며 “설사 발의자가 서울시장이 될 수 있다고 하여도, 위의 선택지들은 서울교육청의 무상급식 계획과는 관계없는 새로운 방안들이므로, 이는 주민투표가 아니라 주민발안이 된다. 주민투표와 주민발안을 명백하게 구분한 지방자치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것이 무상급식의 ‘방안’이 아니라 무상급식의 ‘지원범위’에 대한 투표라면 그것은 단지 예산에 관한 사항일 뿐이어서 역시 주민투표법 상 허용되지 않는다”며 “예산의 획정을 어떻게 매번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주민투표의 본질은 결국 선별급식과 전체급식 사이에서의 선택일 것인데, 정작 투표문안에 ‘선별’과 ‘전체’라는 말은 없고, ‘단계적’과 ‘전면적’이라는 표현만 있다”며 “결국 핵심 논점은 감추고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사이의 선택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국 서울 시민들은 무상급식에 대한 여러 선택의 가능성을 봉쇄당하고, 또 문제의 본질인 보편적 무상급식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서울시장 측의 프레임 속에 갇혀 선택을 강요당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