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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장 미셸 지앙(Jean Michel Djian)은 <문화는 정치다>에서 “문화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이다”라며 프랑스의 문화정치, 문화정책의 진화과정을 설명한다.
프랑스가 문화예술 강국 혹은 문화예술이라는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문화정책 문화정치 때문이었다. 특히 미테랑 대통령 시기에 문화관련 제도는 대대적인 실험과 확립의 효과를 낳았다.
흔히 문화는 문화로, 정치는 정치로 따로 구분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순수예술이나 문화예술의 독립적 근간을 일반화한다.
하지만 정치와 문화는 매우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문화정치나 문화정책으로 꼭 규정될 필요는 없다. 그만큼 본래 밀접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는 문화예술 특히 대중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유효적절하게 다루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 속 빛나라 쇼단은 오늘날의 SM이나 YG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같다.
이렇게 보면 한류가 시작된 연원을 따라 가보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그 재미는 권력과의 긴장관계속에서 발생한다. 무엇보다 현재 드라마에서는 개인사와 얽혀져서 그 쇼단과 주요 인물이 겪게 되는 정치적 역학관계 속의 사건과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그런 일들이 예전의 일만은 아니다.
정치와 대중예술의 관계를 언급하면 대개 대마초 사건을 떠올린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대마초 사건을 터트리는 것이다. 영화 <부당거래>에서도 이점은 잘 부각되기도 했다.
<빛과 그림자>에도 대마초 흡연자 구속 사건이 등장한다. 하지만 단지 표피적인 이런 이벤트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만도 아니다.
근원적으로 문화도 하나의 수익사업이자 산업이며, 그렇기에 드라마 <빛과 그림자>는 이것이 정책과 정치에 밀접하다는 점을 중심에 두고 있다.
장철환(전광렬)의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조명국(이종원)은 강만식(전국환)의 재산을 빼돌려 헌납하고 극장운영을 맡는가하면 장철환의 도움으로 서울의 영화계에 진출한다.
그는 또한 살인사건을 조작하여 강기태와 노상택 등을 구속시키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가요계에도 진출한다. 물론 장철환의 정치권력이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관계들은 문화적 정치판의 매우 부정적인 측면을 말해준다. 다만 이것이 오롯이 전부인 것으로 간주된다면, 정치와 문화의 관계가 특정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라 여기게 할 우려도 있다.
정치를 통해 하나의 정책이 세워지거나 사라지면 많은 예산이 좌우되기 때문에 관련자들의 생사가 갈리기도 한다. 물론 긍정적으로 기획, 집행되면 시민이나 국가적으로 매우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합리적 기준과 정책적 효과로 예산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류의 붐에 따라 정책이 집행되고 있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류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한류의 궁극적 목적화를 위해 전통문화에 많은 예산이 배정되고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정책집행도 보인다. 한류라는 명분으로 조선왕조실록의 영문번역작업과 같이 무모하고 가늠할 수 없는 예산 집행은 과거 문화원형 사업의 사례가 왜 실패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문화정책과 문화정치가 단순히 이해관계가 아니라 실질화를 이루어야 한다.
<빛과 그림자>는 한류의 토대를 보여준다. 이는 한류는 자율체계 속에서 스스로 성장했던 측면이다. 급기야 90년대 초반 자율성과 다양성의 음악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면서 폭발적인 신장을 이루었다.
<빛과 그림자>는 당대의 문화정치가 어떠했는지 그 (부정적인) 그림자를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류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문화정치나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그것이 자율적 한류를 위축시키는 것은 영합과 편취가 심할수록 강화될 수도 있다. 어느 때보다 문화 정치와 정책이 왜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한류의 열풍과 이에 따른 예산의 집행이 허투로 쓰이는 것은 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조명국의 행태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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