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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 극작가) 말로써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은 말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천금과 같은 가르침이다. 반대로 말 한마디 잘못하여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여 세치 혓바닥이 제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모든 일의 성사는 말이 씨가 된다면서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을 가장 저급하고 경박한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의 기본 틀은 말과 행실이 같은 사람을 높이 사모하여 명현(名賢)으로 섬겼고,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은 아무리 학문이 높아도 존경의 대상보다는 경원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경건히 흘러왔던 탓으로 우리말에는 존경어가 다른 나라의 언어에 비하여 월등하게 많고 다양하다.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일제의 식민지치하를 겪으면서 점차 난맥의 길로 들어섰고, 동족상잔이라는 전대미문의 상처를 입으면서, 또 지역의 대립과 이념의 대립, 세대 간의 갈등과 같은 충돌이 잦아지면서 언어생활에까지 살벌하고 자극적이며 또 저급한 표현을 하는 것이 무슨 선각의 지식인 것처럼 번져나가더니 마침내 <나 꼼수>나 <딴지일보>와 같이 우리말 파괴의 선봉으로 등장하여 시퍼런 칼날을 흔들어대게 되었고, 자칫 자해를 할 수도 있는 그 아슬아슬한 칼춤에 맞추어 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위험천만한 광경이 목도되기 시작하였으나, 그 주된 내용이 저질의 정치판을 혐오하며 까뭉개고 있었기에 동조하고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물경 30여만 명을 헤아리게 된 가운데 4·11총선의 막이 오르게 되었으니 그들의 영향력에 기대보려는 얄팍한 행태까지 눈감아 주었는데, 뜻밖의 개표결과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였다.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이라는 개표결과는 양측을 모두 놀라게 할 만큼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서도 ‘김용민 막말 파문‘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민주통합당의 패인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면서 말에 대한 우리민족의 생각이 얼마나 건전하고 엄중한가를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말로써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으로 이 글을 시작하였지만, 당사자인 김용민 씨는 처음 며칠 동안은 말로써 천 냥 빚을 갚을 듯 하더니 채 사흘도 되지를 않아서 욕쟁이로 자처하겠노라고 다시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열광하지 않은 대신 화살은 아주 자연스럽게 연예인 김구라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종군 위안부를 창녀로 비유하였던 10년 전의 그의 막말이 새삼스럽게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그는 돈 방석이나 다름이 없는 모든 방송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하겠음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가 막말의 반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우리 젊은이들의 호연지기를 보는 것 같아 마음 든든하였는데, 또다시 한 입으로 두말하는 혐오스러운 광경을 보게 되어 착잡해지는 마음을 가늠할 길이 없다.
필리핀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 여성이 한국인 남성에게 시집을 와서 두 남매의 어머니가 되었고, 그 어려운 차별과 멸시를 겪으면서도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15년 째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이자스민 씨는 새누리당의 비례대표로 선정되었고, 마침내 국회로 입성하여 20만명을 웃도는 다문화가족들의 어려운 사정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자스민 씨가 극복하였던 고난의 세월에 박수와 갈채를 보내는 것이 온전한 도리다. 그럼에도 우리의 젊은 네티즌과 트위터러들이 인종주의적인 선동으로 그녀를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 될 수가 없는 저질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한 입으로 두 말하는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을 가장 저급하고 경박한 사람으로 취급하였던 우리 민족의 역사인식이 살아나야 막말이 자신을 베는 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를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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