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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일보] 어딜 가든 눈에 익은 카페 하나쯤은 있어야 ‘안심’하는 20대 여성에게 이태원은 낙원이다.
또 사치는 싫지만 고급 소비는 즐기는 보보스(BOBOS, 부르주아 보헤미안)족에게도 이태원은 매력적이다.
여기서 이태원이란 6호선 한강진역~이태원역~녹사평역을 꿰는 지역을 통칭한다.
녹사평역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해방촌까지도 포함한다. 한국전쟁 후 피난에서 돌아온 이들이 모여살던 데서 유래한 해방촌의 고만고만한 집들이 주는 정겨움.
이태원은 도시와 멀어지긴 싫은, 그러면서도 골목이 그리운 이들을 반겨주는 동네다.
봄의 전령이 기다려지는 겨울, <시민일보>기자가 이태원 구석구석을 걸어봤다.
◆알록달록 새 옷 갈아입은 해방촌
해방촌은 남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동네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다른 여느 서민동네와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 외국인과 이국식 술집이 많다는 점으로 이태원임을 일깨우는 정도였다.
그랬던 해방촌이 달라졌다. 관할 구청인 용산구가 해방촌 환경 개선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인 것이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바로 거리 곳곳의 벽화들이다. 기자는 당초 용산구가 이곳에 벽화사업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좋은 의도로 벽화사업을 벌였지만 얼마 안 가 매연과 먼지에 오염돼 종국에는 또 하나의 흉물 아닌 흉물로 변해 버린 벽화를 서울 도심에서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촌은 기대 이상이었다. 동네 전체가 그림 아닌 ‘디자인’을 입었다고 해도 될 만큼 확 달라졌다.
특히 돋보이는 건 떡살(떡에 무늬를 찍는 판), 단청 같이 한국문화를 소재로 한 벽화다. 또 만져보는 재미가 있는 입체식 해방촌 희망나무, 성당 창문을 연상시키는 스테인드글라스 식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는 설치미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시선을 확 잡아끈다. 주택 가스 밸브관을 알록달록 칠한 작품 ‘무지개를 따라서’도 기발하다.
용산2가동 명물인 108계단, 남산 소월길등 해방촌을 8개 구역으로 30개의 벽화와 조형물로 꾸몄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시대적 상처를 지닌 해방촌은 외국인들의 많은 이주로 인해 ‘상전벽해’라고 느낄 만큼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곳”이라며 “본 사업을 통해 내·외국인 함께 호흡하며 일상과 예술이 하나 되는 마을로 자리매김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회색빛 골목이었다가 화려한 예술동네로 탈바꿈한 해방촌을 보며 깨진 유리창이론의 반대 현상을 기대한다. 깨진 유리창이론에 따르면 도시의 사소한 방치물-이를테면 창문이 부서진 차-들이 범죄를 부추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소한 벽화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시작은 작은 벽화였지만 그 끝은 도시의 부흥이기를, 또 이웃과의 소통 부활이기를 기대한다.
◆이태원 뒷골목 '몽환적' 풍경
밤의 이태원 뒷골목은 확실히 어둡다. 주황색 나트륨 보안등이 뿜어내는 칙칙한 불빛만이 이곳 뒷골목을 비춘다.
어두운 뒷골목은 이국식 음식점 테라스에 자리한 손님들의 떠드는 소리와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는 또 이름난 카페는 물론이고 이름없는 카페도 많다. 높이가 높은 식탁과 바(bar)식으로 된 이국식 술집이 가득하다. 이태원은 남들과 다른 소비를 하고 싶은 도시 젊은이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태원이 더욱 인기를 끄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두운 밤거리, 경사진 골목은 걷기 불편하고 또 늦은 밤엔 위험하기도 하다.
용산구는 이에 오는 5월부터 이태원역 해밀턴호텔 뒷골목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고 한다.
이름하여 해밀톤호텔 뒷골목 특화거리 조성사업이다. 이 일대를 정비하고 더불어 세계음식특화거리로 만들겠다는 계획.
계획안에 따라 용산구는 이 일대 울퉁불퉁한 도로와 낡은 가로등을 정비하고 내년 말까지 오래된 간판을 일제히 정비할 방침이다. 현재는 차없는 거리 조성 계획도 검토중이다.
어찌됐든 이태원은 골목이 살아있는 곳이다. 또 골목이 남아있을 때, 지금처럼 도심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세련된 도시 문화와 뒷골목 문화가 공존하는 이태원의 내일을 기대한다.
이나래 기자 wng1225@siminilbo.co.kr
사진 설명 = 해방촌, 이태원 일대는 도시 속 골목이 살아있는 지역이다. 사진은 이국식 음식점들이 즐비한 이태원 해밀톤호텔 뒷골목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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