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음’ 청년 역대 최대 속 정년 연장 공방,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칼럼 / 시민일보 / 2025-11-09 12: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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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현재 한국 사회는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의 정치적 양극화와 세대 갈등 그리고 이념적 분열이라는 깊은 균열 속에 빠져들어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과 책임 전가로 점철된 이 분열의 고리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가 주창한 ‘귀인이론(歸因理論 │ Attribution theory)’은 사람들이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하는지를 다룬다. 우리는 흔히 이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의 독선, 외세의 개입 혹은 시대의 불가항력 등 외부에서 찾는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적 통합은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메아 쿨파(Mea Culpa │ 내 탓이오)의 정신, 즉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는 내부 귀인(Internal Attribu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세대 간에 서로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시그널(Signal) 일 뿐 아니라 방증(傍證)이다. 하지만 작금의 세대 갈등은 일자리 문제로 비화하고 생존의 문제로 비등하고 있다. 과거에도 세대 갈등이 있었지만, 남겨진 건 사회적 피로와 분열뿐이었음을 이미 학습했다. 갈등 완화를 위해 세대 간 이해와 공감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각 세대가 직면한 구조적·현실적 어려움을 줄여야 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층에게는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가, 노년층에게는 지속 가능한 삶의 기반이 필요하다. 정치권 역시 확증편향(確證偏向 │ Confirmation Bias)에 빠져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대를 편 가르기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모든 세대가 손을 맞잡아도 버거운 시기다. 내부귀인(內部歸因)이나 외부귀인(外部歸因)을 초월해 사회 전체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무엇보다도 정년 연장 추진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동계는 연내 65살 정년 연장 입법을 촉구하는 반면 경영계는 현행 법정 정년 60살 이후 선별적 재고용으로 맞서고 있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도 정년 연장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했다. 이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소모적 공방을 지켜만 볼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합의안 도출에 적극 나서야만 한다. 지난 11월 6일 민주노총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를 갖고 정년 연장 입법을 재차 촉구했다. 하루 전날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민주당이 정년 연장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올해 안에 65세 정년 연장을 입법하라고 정부 여당에 요구했다. 양대 노총은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65세 정년 연장 방안을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양대 노총은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계가 연일 압박에 나선 것은 “올해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아 입법 시한이 임박했는데도 민주당이 사회적 논의를 핑계로 애매모호한 태도만 보여주고 있다.”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4월부터 노사단체 및 전문가 등과 머리를 맞댔지만 입법안의 구체적 윤곽에 대해선 언급을 피해 왔다.

    물론 그 배경에는 노·사 간 입장의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다는 문제가 있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연계한 일률적인 정년 연장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한다. 반면에 경영계는 정년 뒤 재고용을 허용하되 기업의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입장이다. 기업이 선별적으로 재고용 대상을 정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따라서 충분한 논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 부담과 적정한 임금 수준, 청년 고용에 미칠 영향 등 세대와 기업 규모·업종을 아울러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일도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있는 사람이 264만 1,000명이다. 1년 새 7만 3,000명이나 늘었다. 이 중 30대가 32만 8,000명으로 작년보다 1만 9,000명(0.4%↑)이 늘었고 4년째 증가 추세를 이어가며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다니 개인적으로 큰 불행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쉬었음’으로 분류된 29세 이하 청년(15~29세)도 43만 5,000명으로 사정은 비슷하다. 이 둘 3명 중 1명(34.1%)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라고 했다. 능력이나 학력 등을 고려할 때 자신의 눈높이나 미래 준비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가장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할 청년기조차 구직을 포기하는 인구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가까운 미래에 성장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란 전조나 다를 바 없다. 정년 연장이 미뤄둘 수 없는 과제라지만, 청년 일자리 활성화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 지혜를 짜내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임무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통계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구직시장에서 청년들이 발 빼는 주된 원인이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 엇박자)’에 있다는 점이다. 학교 교육과 산업수요 간 괴리로 발생하는 전공 불일치 취업에 대한 불안뿐만 아니라, 경력직 위주 채용 시장에 대한 두려움도 청년 구직 의지를 꺾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높은 장벽이다. 비정규 계약직으로 일단 취업하는 경우 정규직보다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까다로운 구조이다 보니 많은 청년이 ‘그냥 쉬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정부는 ‘쉬었음' 청년을 줄이기 위해 대기업 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좁히고 비정규직과 하청노동 문제를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 더불어 신규 채용 확대를 유도하면서 신산업 일자리 창출에 박차를 가해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청년 일자리 축소와 연관된 정년 연장 논의가 재계 노동계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숙의와 대타협을 통해 완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정년 연장 논의가 정부와 정치권의 미온적 태도로 소모적 공방만 이어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간 합의 도출을 모색해 온 기간이 결코 짧았다고만 볼 수도 없다. 노후 소득이 미흡한 가운데 고령자의 안정적 고용 환경 구축도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정부·여당이 최소한의 원칙과 ‘가이드라인(Guideline)’을 제시하고 타협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만 한다. 올해 5월에 나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권고안은 의무 재고용을 근간으로 한다. 지금도 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선별적 재고용 주장은 최소한 자제시켜야 한다. 청년 고용위축에 대한 과도한 우려도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업종과 직무에 따라 대체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 과도한 공포 마케팅은 불식시키고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해 절충점을 찾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임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지만 ‘65세 정년 연장’을 법으로까지 강제하지는 않았다.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 고용 가운데 하나를 기업 스스로 선택하게끔 했다. 고령층이 퇴직한 후에 재계약을 하는 경우 임금을 평균 40%가량을 삭감했다. 지금도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는 이번에 정년을 연장하면 혜택을 보는 세대의 자녀들이다.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양대 노동조합원들부터 솔선하여 합리적인 정년 연장 방안을 모색하는 데 적극 협조해야만 한다. 중국에서도 올해부터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203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65세로 높아지게 되는 만큼 정년 연장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임금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나이만 올리는 방식은 현실성 결여로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지금 필요한 선택은 일본처럼 임금 체계 개편과 실행력 가능한 고용연장 방식을 결합한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이 필요하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연내 입법이 이루어져도 새로운 제도 시행까지는 빨라야 2027년에나 가능하다. 첨예한 대립보다 사회적 합의 도출만이 갈등은 파괴적인 투쟁이 아닌 건설적인 숙의(熟議) 과정을 통하여 승화할 수 있고, 더욱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된다. 논쟁과 갈등만 반복하는 사이‘골든타임(Golden-time)’만 속절없이 흘러갈 뿐이다. 고령사회 노동시장 구조에 맞는 합리적 대안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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