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홍콩의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화재 참사로 인해 희생되신 모든 분들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며, 유가족분들께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도로 발전된 도시에서 발생한 이 비극은, 우리가 의지해 온 ‘안전은 설비와 제도만으로 확보된다’는 오랜 신화에 균열을 일으키며 우리 사회에 뼈아픈 경각심을 던져주었습니다.
이 사건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소방시설, 법규 등 기술적·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왜 대형 화재 참사는 반복되는가? 필자는 단언합니다. 화재는 영구히 막을 수 없으며, 소방시설이나 제도와 같은 기계적/법적 장치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기계와 전자장비는 고장이 날 수 있고, 법과 제도는 완벽한 상황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대형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궁극적이고 유일한 ‘Fail Safe’ 방법은, 바로 화재의 확산을 저지하고 피난로를 확보하는 ‘거주자 개개인의 작은 습관과 시민의식’뿐입니다.
대한민국 역시 고층 건축물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대부분의 사망 사고는 직접적인 불이 아닌 ‘연기 흡입 및 질식사’였습니다. 연기는 고온의 유독가스를 품고 있으며, 특히 고층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 승강로, 계단실 등 수직 공간을 통해 상층부로 급속히 확산됩니다. 이 확산 속도는 소방관의 초기 진압 속도보다 훨씬 빨라, 화재가 발생한 층보다 위의 거주자들이 대피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피난로를 가득 채운 유독성 연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주요 아파트 화재 사망 사고 사례들을 보면, 시설이나 관계 제도의 문제와 더불어 대형 인명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연기의 급속한 확산과 피난로 확보의 실패라는 상황적 요인도 있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건축 및 소방 법령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으며, 방화구획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방화문의 개방을 허용하는 일부 경우에는 화재 시 자동으로 닫히는 자동 방화문 닫힘 장치 등이 설치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기술적 장치는 기계적, 전기적 작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장이나 오작동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대형 인명피해가 반복되는 데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결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행동(Human Factor)’에 내재된 오류와 실수입니다.
고층 건물 화재 시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오류는 ‘거주자가 대피 시 현관문(방화문)을 닫지 않고 피난하는 행위’입니다.
화재가 발생한 한 가구의 현관문이 열려 있다면, 실내의 고온, 고압의 연기와 화염은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전실로 쏟아져 나오고, 수직 통로를 타고 상층부로 급격히 이동합니다. 이는 상층 거주자의 피난 안전을 즉각적으로 위협합니다. 더불어 계단실 방화문의 관리 소홀 역시 생명을 위협합니다. 계단실은 유일한 ‘생명의 통로’이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함에도, 많은 경우 편의를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두거나 물건을 적치합니다. 평소 열려 있던 이 문은 화재 발생 시 연기가 다른 층으로 확산하는 최악의 통로가 되어 버립니다.
고층 건축물 화재 시, 대형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응 방안은 ‘화재 발생 장소의 온전한 봉쇄(Compartmentation)’입니다. 이는 화재가 발생한 세대(실)를 방화문을 활용해 방화구획을 확보하여, 연기와 열이 다른 안전한 피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곳은 바로 거주 공간의 현관문 너머, 즉 전실과 계단실로 이어지는 피난 통로입니다.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이 피난로만큼은 불과 연기로부터 안전하고 깨끗한 공간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원시적이고 기계적인 안전 수칙을 반드시 내면화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1. 현관문(방화문)은 무조건 닫고 피난: 불을 끌 수 없는 상황에 대피할 때는, 반드시 우리 집 현관문(방화문)을 완벽하게 닫고 피난해야 합니다.
2. 계단실 방화문은 평소에도 반드시 닫을 것: 계단실은 생명의 공간이며, 방화문을 열어두는 것은 스스로 생명줄을 끊는 행위와 같습니다.
3. 대피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실을 통해 지상으로.(단, 하층부 화재 등으로 하강이 불가피할 경우 피난이 가능한 옥상 등 최종 피난처로 이동)
독자 여러분, 지금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집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고 현관을 지나 계단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래층에서 올라온 연기가 계단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어떨까요? 평소의 나의 행동과 습관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때 가서 시설 고장, 제도적 헛점, 관리 부실 등 누군가를 비난하며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이미 늦습니다.
안전에 있어서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기계적인 준비와 연습이 최선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설을 갖추어도 화재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르게 인식하고 준비된 행동을 한다면, 대형 인명사고는 막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앞서 열거한 ‘방화문을 닫는 행동’, ‘계단실 방화문을 닫고 생활하는 습관’ 등의 행동 요령은 실제 화재 상황과 같은 환경에서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합니다. 이러한 실질적인 안전 습관을 체득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경기도 국민안전체험관을 추천합니다. 이곳에는 아파트 화재 피난 안전 체험 시설 및 주상복합건물 화재 안전 시뮬레이터가 운영 중이니,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올바른 피난 행동을 몸에 체득하는 경험을 해보시기를 강력히 권유합니다.
우리 모두의 작은 ‘방화문을 확보하는 습관’과 안전을 향한 ‘시민의식’, 그리고 이를 습관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이야말로, 수많은 고귀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안전 장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