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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불합리한 규제 개선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행위를 '적극행정'이라 하고, 부작위 또는 직무태만 등으로 국민 권익을 침해하거나 국가 재정상 손실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소극행정'이라 한다.
최근까지도 끝나지 않는 고위 공직자 탄핵 사태는 단순히 한 개인의 책임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행정 전반에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책임을 묻는 것은 쉬우나, 그 공백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여러 장관 및 고위 인사들에 대한 탄핵 추진 사례는 정치적 갈등을 넘어, 행정의 부작위와 소극행정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법령에 따라 마땅히 수행해야 할 조치를 미루거나, 명백한 권한이 있음에도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모습은 공직 사회 전체에 경각심을 주고 있다.
“하지 않음도 위법이 될 수 있다” 라는 말 보다 “탄핵으로 인한 행정 공백, 행정 마비” 라는 표현이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정당한 절차를 통한 탄핵이 견제와 경고의 수단으로 기능하더라도, 그 여파로 발생하는 행정의 공백과 혼란, 그리고 그로 인한 또 다른 소극행정의 확산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보장된 정보공개청구 제도와 같은 투명 행정 장치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정보공개청구제도와 같은 국민 참여 기반 행정 시스템마저 소극적으로 운용될 경우, 청렴 공직 사회의 근간이 위태로워 질 것이다.
정보공개 종합평가와 체감의 괴리
지난 2024년 1월, 정보공개 종합평가 결과가 공개되었다. 평가 대상인 554개 기관 중 ‘미흡’ 평가를 받은 기관이 단 2곳에 불과했고, 행정안전부는 이를 기관 맞춤형 컨설팅의 성과라고 자평했다.
이번 평가는 ▲사전정보공표, ▲원문정보공개, ▲정보공개청구 처리, ▲고객관리, ▲제도운영 등 5개 분야를 기준으로 실시됐다.
제도의 의의는 분명하다. 정보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며, 동시에 국민이 정책에 참여하고 행정을 감시할 수 있는 발판이다. 정부 또한 이를 통해 책임성과 투명성 확보, 부패 예방, 청렴 거버넌스 실현이라는 핵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위 지표에서 국민의 체감도를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작년에 발표한 정보공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정보공개 청구는 역대 최다인 184만 2,000건, 공개율은 94.3%로 5년 연속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의 기계적 해석과 그로 인한 모순과 오류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연도별, 기관별 연차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전체 청구 건수 중 경찰청, 법무부, 대검찰청 등 특정 기관에 집중된 수치가 전체의 약 88%를 차지해 공개율을 왜곡하고 있다.
다시 말해 청구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기관에서 비공개율이 크게 증가해도, 전체 청구건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이 부분공개인데도, 부분공개와 전부공개를 모두 ‘공개’로 분류하여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정보는 가려진 채로 높은 공개율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은 심각한 통계적 모순이다.
이 제도에 의한 공공기관의 대응 부담에 대한 부분도 분명히 다루어져야 하지만 별론으로 하고, 실질적인 국민의 알권리, 국민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보장 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고 변화해야 한다.
‘검토 중’, ‘기관 내부자료’, ‘공익 침해 우려’, ‘정보의 부존재’ 등 다양한 사유로 핵심 정보가 가려지고 있는 현실에 필자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청구는 가능하지만, 의미 있는 정보는 얻기 어렵다”는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중앙 부처 및 대형 기관은 비교적 정보공개에 적극적인 반면, 지방자치단체와 산하기관은 낮은 공개율과 잦은 응답 지연으로 국민 체감도와 괴리를 보이고 있다.
정보공개제도의 개선을 위한 실천적 방향
정보공개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공직사회의 청렴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방향이 필요하다.
· 사전 정보공개 확대
국민이 청구하지 않아도, 공공기관이 스스로 정책 추진, 예산 집행, 인사 등의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 이해 가능한 정보 제공 방식
정보공개는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시각화, 요약, 쉬운 해설 등이 포함된 자료 제공 기준이 필요하며, 청년·고령층·정보 취약계층도 고려한 디자인이 중요하다.
· 시민 참여 기반의 정보 모니터링 체계 구축
현재의 정보공개위원회나 심의위원회는 특정 사안이나 청구 등에 의한 소극적, 형식적인 운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일부 기관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모니터링단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더욱 확산되어야 하며, 사전정보공표항목에 대한 점검도 강화해야 할 것 이다.
전문가, 시민사회, 언론, 청년 등이 참여하는 상설 모니터링 위원회를 기관별로 구성을 의무화하여, 비공개 판단의 정당성 검토와 청렴 감시 기능을 국민에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 국민 체감도 지표 도입
현재의 정보공개 종합 평가 지표에 ‘국민 체감도’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
공개율 수치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공개된 정보가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었고, 신뢰를 주었으며, 행정의 변화를 이끌었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정보공개의 진정한 의미
오늘날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탄핵은 분명 건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탄핵 이후의 상황,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우고 다시 행정을 작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해당 행정기관에 떠넘기고 있는 실태다.
탄핵 이후의 행정 공백, 공직자의 눈치 보기, 실패를 두려워하는 방어적 태도는 결국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어떤 변화와 혁신도 만들지 못하는 행정의 정지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 것이야 말로 국민이 체감하는 가장 큰 손실일지도 모른다.
정보공개제도는 이런 상황에서 국민과 행정을 연결하는 마지막 창구이자 행정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의 하나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정보화가 가장 앞선 나라 중 하나이지만, 행정의 투명성과 청렴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기술보다 더 빠르게 앞서가고 있다.
“정보는 곧 권력이다”라는 말을 체감하는 이 시대에, 공공정보는 더 이상 기관만의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과 공유되어야 할 공공의 자산이며, 행정의 신뢰를 입증하는 도구다.
우리는 이제 “공개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어떻게 더 잘 공개할 것인가”, “어떻게 국민이 체감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은 공공은 투명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실처럼 의지 없는 제도와 형식에 머물러 있을 때 부정부패와 불신을 낳게 된다고 생각한다.
부작위와 소극행정은 공직자의 태도에서 비롯되며, 이를 극복하는 해답은 국민과 함께하는 창의적인 행정 철학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정보공개는 단지 요청에 의해 서류를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행정의 진심을 증명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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