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웅변왕, 그 공포의 입
부드럽고 푸근하고 화기가 넘치던 방안이 돌연 꾸드러진 긴장감에 휩싸였다.
고정관이하 세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굳게 입을 다물고, 번뜩이는 눈망울들을 문제의 명단위로 기울였다. 마을 별로 이름, 생년월일, 혐의사실 등이 적혀있었다. 마치 수사관이 작성한 블랙리스트를 떠올리는, 소름끼치는 명단이었다.
“도합 23명이군,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니란 말야. 이 땅의 암적 존재들―8·15해방의 종소리를 듣기 바쁘게 후딱 없애버렸어야 할 독종들인데, 여태까지 살려두었다니 우리 사람들 너무 무심했던거 아니야? 그런데, 이 자들을 방준태 해치우듯 일일이 바다에 쳐 넣는다는 것도 쉬운 노릇이 아니구. 팀웍이 필요할 것 같네. 보아란 듯이 공공연히 조직을 만들어서 멋진 방법으로 처단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 한다구”
고정관이 한차례 명단을 훑어보고 나서, 매우 진지해진 얼굴로 엄숙하게 의견을 말했다.
“진작 저는 특공대원으로 5명의 청년들을 선발해 놓았습니다. 도선마을 출신은 저 혼자뿐이고, 4명은 면소재지인 관광마을 사람들이지요. 관광마을에 잇는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한 쓸만한 후배들이랍니다. 패기 있고 야망에 불타는 믿음직스런 녀석들이에요. 곧 형님들을 찾아뵙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김순익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
“아, 그래? 천만다행이군! 정말 잘 했어. 서둘러 빈틈없는 작전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니 마음 든든하네. 그런데 이건 조군과 내가 잠깐 의견교환을 했던 건데 말야…”
고정관은 짐짓 머뭇거리는 자세로 궁금증을 돋우겠다는 듯 갑자기 말꼬리를 흘려버리는 것이었다.
“아니, 왜 주춤하십니까? 애태우지 말고 어서 말씀 계속 하셔야지요”
김순익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채근을 했다.
“보아하니 관광면장 이종상(李鐘祥)이 공인(公人)아닌 관광마을의 한 개인자격으로 이름이 올라있는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되네, 명단에 끼여있는 23명 가운데 우두머리중의 우두머리가 이종상면장아닌가? 이 말은 이종상이야말로 평범한 23명보다 백배 천배 가공할만한 악행을 저지른자일터이므로, 걸맞는 단죄가 따라야 옳다는 얘기일세, 그래서 내말은 극비리에 처단하기보다 면민들이 총궐기해서 시위하고, 규탄해야 옳지 않나 싶거든! 따라서 관광면장 규탄사건을 신호탄으로 제주도내 각 읍·면에서 일제히 들고일어나 불꽃튀는 범도민운동으로 확산시켜보자는 얘기지 내 얘기는…”
고정관은 흥분된 목소리로 주먹까지 들어올리며 열변을 토했다. 백만명과 맞먹는 만장한 세사람의 청중은 맘속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있지 않고 있었다.
“정말 멋진 구상이십니다. 제가 해온 것은 우물한 개구리식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내용을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순익은 감탄하면서 자신의 짧고 미숙한 구상을 솔직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무릎꿇고 배우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제주땅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거창한 작전인 만큼 보다 슬기롭고 치밀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 그래서 중지(衆智)를 모아야겠기에 달미동의 이만성군도 만났었네. 그 사람에겐 그 얘기를 못했지만, 그 사람도 찬성하리라고 믿어. 제 1차로 김순익군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까 곧 이만성이 동참하게 되면 거사(擧事)에 대한 좋은 방안이 나오게 될 것으로 여겨지네.
이틀후면 한남마을에서 이만성군과 만나기로 되었으니까 순조롭게 진척될 것으로 보고 있어”
“아, 그렇습니까? 이만성 그 친구는 저도 가금 만나곤 합니다. 영재의숙 동문인데다 친밀한 사이지요. 그럼, 저도 이틀 후 한남마을로 내려가서 함께 만나기로 할까요?”
“그래도 좋겠지만, 그날밤엔 별도의 모임이 잇기 때문에 자네에겐 곧 소식 전할테니 다음으로 하자구!”
“알겠습니다. 형님들만 믿고 목이 빠지도록 연락있기를 기다리기로 하겠습니다”
김순익은 몹시 들떠 있었지만, 다소곳이 순응하겠다는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부드럽고 푸근하고 화기가 넘치던 방안이 돌연 꾸드러진 긴장감에 휩싸였다.
고정관이하 세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굳게 입을 다물고, 번뜩이는 눈망울들을 문제의 명단위로 기울였다. 마을 별로 이름, 생년월일, 혐의사실 등이 적혀있었다. 마치 수사관이 작성한 블랙리스트를 떠올리는, 소름끼치는 명단이었다.
“도합 23명이군,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니란 말야. 이 땅의 암적 존재들―8·15해방의 종소리를 듣기 바쁘게 후딱 없애버렸어야 할 독종들인데, 여태까지 살려두었다니 우리 사람들 너무 무심했던거 아니야? 그런데, 이 자들을 방준태 해치우듯 일일이 바다에 쳐 넣는다는 것도 쉬운 노릇이 아니구. 팀웍이 필요할 것 같네. 보아란 듯이 공공연히 조직을 만들어서 멋진 방법으로 처단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 한다구”
고정관이 한차례 명단을 훑어보고 나서, 매우 진지해진 얼굴로 엄숙하게 의견을 말했다.
“진작 저는 특공대원으로 5명의 청년들을 선발해 놓았습니다. 도선마을 출신은 저 혼자뿐이고, 4명은 면소재지인 관광마을 사람들이지요. 관광마을에 잇는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한 쓸만한 후배들이랍니다. 패기 있고 야망에 불타는 믿음직스런 녀석들이에요. 곧 형님들을 찾아뵙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김순익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
“아, 그래? 천만다행이군! 정말 잘 했어. 서둘러 빈틈없는 작전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니 마음 든든하네. 그런데 이건 조군과 내가 잠깐 의견교환을 했던 건데 말야…”
고정관은 짐짓 머뭇거리는 자세로 궁금증을 돋우겠다는 듯 갑자기 말꼬리를 흘려버리는 것이었다.
“아니, 왜 주춤하십니까? 애태우지 말고 어서 말씀 계속 하셔야지요”
김순익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채근을 했다.
“보아하니 관광면장 이종상(李鐘祥)이 공인(公人)아닌 관광마을의 한 개인자격으로 이름이 올라있는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되네, 명단에 끼여있는 23명 가운데 우두머리중의 우두머리가 이종상면장아닌가? 이 말은 이종상이야말로 평범한 23명보다 백배 천배 가공할만한 악행을 저지른자일터이므로, 걸맞는 단죄가 따라야 옳다는 얘기일세, 그래서 내말은 극비리에 처단하기보다 면민들이 총궐기해서 시위하고, 규탄해야 옳지 않나 싶거든! 따라서 관광면장 규탄사건을 신호탄으로 제주도내 각 읍·면에서 일제히 들고일어나 불꽃튀는 범도민운동으로 확산시켜보자는 얘기지 내 얘기는…”
고정관은 흥분된 목소리로 주먹까지 들어올리며 열변을 토했다. 백만명과 맞먹는 만장한 세사람의 청중은 맘속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있지 않고 있었다.
“정말 멋진 구상이십니다. 제가 해온 것은 우물한 개구리식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내용을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순익은 감탄하면서 자신의 짧고 미숙한 구상을 솔직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무릎꿇고 배우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제주땅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거창한 작전인 만큼 보다 슬기롭고 치밀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 그래서 중지(衆智)를 모아야겠기에 달미동의 이만성군도 만났었네. 그 사람에겐 그 얘기를 못했지만, 그 사람도 찬성하리라고 믿어. 제 1차로 김순익군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까 곧 이만성이 동참하게 되면 거사(擧事)에 대한 좋은 방안이 나오게 될 것으로 여겨지네.
이틀후면 한남마을에서 이만성군과 만나기로 되었으니까 순조롭게 진척될 것으로 보고 있어”
“아, 그렇습니까? 이만성 그 친구는 저도 가금 만나곤 합니다. 영재의숙 동문인데다 친밀한 사이지요. 그럼, 저도 이틀 후 한남마을로 내려가서 함께 만나기로 할까요?”
“그래도 좋겠지만, 그날밤엔 별도의 모임이 잇기 때문에 자네에겐 곧 소식 전할테니 다음으로 하자구!”
“알겠습니다. 형님들만 믿고 목이 빠지도록 연락있기를 기다리기로 하겠습니다”
김순익은 몹시 들떠 있었지만, 다소곳이 순응하겠다는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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