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7년 가꾼 순정의 꽃
이만성은 3일전 그날 저녁, 고정관-조용석과 함께 권커니 잣커니 초장부터 곤드레 만드레 술에 취하게 되었고, 모두가 허풍선이로 탈바꿈해서 걸쩍지근하니 회포를 풀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만성은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웬일인지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기분이었지만, 그게 무슨 가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끝내 그것은 내키지 않은 작별로 이어졌다.
이만성은 동구밖까지 따라가서 배웅을했다. 어둠속으로 파묻혀버린 두사람의 뒷보습은 한참동안 가물가물하다 움도 싹도 없이 꺼지고 말았다.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만성은 넋을 잃은채 꼼짝을 않고 멍하니 서 있었다. 왜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일까?
집으로 들어가야 할 터인데! 하고, 뒤돌아서서 발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섬광처럼 번쩍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부동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산만했던 정신을 하나로 몽똥그렸다. 아, 그것이었구나!
술자리에서 떠올랐던들 선배님들에게 털어놓고 의중을 떠볼 수 있었을 것을…. 어쩌면 그들은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을는지도 모를 일이엇는데…. 버스 떠난 뒤에 손을 든 격이 되고 말았지만, 또 버스는 올테니까 끄떡없고….
10여일전의 일이었다. 아침나절이었는데, 불청객 한사람이 불쑥 들이닥쳤다.
도선마을의 김순익-첫눈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여져서 찾아온 용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기 보다도 불안감이 앞서는 것이었다. ‘영재의숙’ 동문인 그는 2년제 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학력이 고작이었지만, 의협심이 강하고 신뢰성도 높고…그래서 이만성과는 성격상 공통점을 지닌 막역한 친구인 셈이었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다름이 아니고 우리 젊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대청소를 해야겠기에”
“대청소라니…?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우리 관광면 안에서 눈에 뵈는 것없이 판을 치며 행패부려온 친일바, 민족반역자, 고등계형사 앞잡이들 있잖은가? 그치들을 때려잡아야잖겠어? 내가 선배나 동창들에게서 자문을 받지 않고 주제넘게 착수를 한 셈일세, 특공대작전을 펴기 시작했는데, 자네라면 발벗고 나서서 동참해 줄 것으로 믿고 이렇게…”
“아, 그래? 듣고보니 내가 부끄럽군! 그래 싹쓸이해 버려야 할 대상은 누구누구이고, 특공대원으로는 어떤 사람을 내세울 것인지? 얘기해주게“
“암, 얘기해주고말고…. 나 혼자서 나름대로 꼽아보았네만, 아직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복안인만큼 참고로 들어주게. 제거 대상은 23명 안팎이고, 특공대원은 5∼6명 확보해 놓은 상태일세”
“음, 제거대상이 23명 안팎이라?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니군. 제주땅에서 판을 쳐온 읍·면 단위 숫자를 합친다면 만만찮은 세력이 되겟는걸”
“쫓기던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놈들의 발악이 가공하라는 점을 계산에 넣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우리 관광면 만을 놓고 보더라도 전·현직 면장을 필두로, 한남2리의 최상균, 최상수 형제를 꼽을 수 있잖는가?
특히 최상균 형제는 젊은 해녀들을 짓밟아온 희대의 치한들일 뿐만 아니라 식량공출, 탄광과 비행장 건설공사에 강제 동원하는 데 앞장서서 열렬한 일본인 앞잡이 노릇해온 대명사들인데….
능지처참해도 직성이 풀리지 않을 악질들이라구”
김순익은 입에 게거품 물고 빠드득 이를 갈며 분노를 터뜨렸다.
“최상균 형제는 우리 집 안에도 엄청난 손해를 끼친 장본인이라구. 농토를 망쳐놓앗었고…
천벌 받아 마땅한 악종들일세. 이런 경우를 들 수 있겠지. 그치들은 윗밭에 논을 만들고 흘러내리는 물을 몽땅 우리 밭에 쏟아 부은 게야. 10여년 동안 5백평 가량 농사를 못짓게 했다면 아무도 믿으려 들지 않을걸!
아버지가 고육지책으로 밭 일부를 잘라서 또랑을 만들어 물을 흘러보냈지. 어디 그 뿐인가? 바로 문제의 그 밭 동쪽 경계선 돌담이 홍수탓으로 그자들의 밭으로 무너졌는데, 그자들은 돌담을 제자리에 쌓지않고 활처럼 휘우듬하게 우리밭 귀퉁이를 잘라 먹었지 뭔가. 5∼6평이었지만…그런 날강도들 이라니까”
이만성의 말은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이만성은 3일전 그날 저녁, 고정관-조용석과 함께 권커니 잣커니 초장부터 곤드레 만드레 술에 취하게 되었고, 모두가 허풍선이로 탈바꿈해서 걸쩍지근하니 회포를 풀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만성은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웬일인지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기분이었지만, 그게 무슨 가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끝내 그것은 내키지 않은 작별로 이어졌다.
이만성은 동구밖까지 따라가서 배웅을했다. 어둠속으로 파묻혀버린 두사람의 뒷보습은 한참동안 가물가물하다 움도 싹도 없이 꺼지고 말았다.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만성은 넋을 잃은채 꼼짝을 않고 멍하니 서 있었다. 왜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일까?
집으로 들어가야 할 터인데! 하고, 뒤돌아서서 발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섬광처럼 번쩍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부동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산만했던 정신을 하나로 몽똥그렸다. 아, 그것이었구나!
술자리에서 떠올랐던들 선배님들에게 털어놓고 의중을 떠볼 수 있었을 것을…. 어쩌면 그들은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을는지도 모를 일이엇는데…. 버스 떠난 뒤에 손을 든 격이 되고 말았지만, 또 버스는 올테니까 끄떡없고….
10여일전의 일이었다. 아침나절이었는데, 불청객 한사람이 불쑥 들이닥쳤다.
도선마을의 김순익-첫눈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여져서 찾아온 용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기 보다도 불안감이 앞서는 것이었다. ‘영재의숙’ 동문인 그는 2년제 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학력이 고작이었지만, 의협심이 강하고 신뢰성도 높고…그래서 이만성과는 성격상 공통점을 지닌 막역한 친구인 셈이었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다름이 아니고 우리 젊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대청소를 해야겠기에”
“대청소라니…?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우리 관광면 안에서 눈에 뵈는 것없이 판을 치며 행패부려온 친일바, 민족반역자, 고등계형사 앞잡이들 있잖은가? 그치들을 때려잡아야잖겠어? 내가 선배나 동창들에게서 자문을 받지 않고 주제넘게 착수를 한 셈일세, 특공대작전을 펴기 시작했는데, 자네라면 발벗고 나서서 동참해 줄 것으로 믿고 이렇게…”
“아, 그래? 듣고보니 내가 부끄럽군! 그래 싹쓸이해 버려야 할 대상은 누구누구이고, 특공대원으로는 어떤 사람을 내세울 것인지? 얘기해주게“
“암, 얘기해주고말고…. 나 혼자서 나름대로 꼽아보았네만, 아직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복안인만큼 참고로 들어주게. 제거 대상은 23명 안팎이고, 특공대원은 5∼6명 확보해 놓은 상태일세”
“음, 제거대상이 23명 안팎이라?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니군. 제주땅에서 판을 쳐온 읍·면 단위 숫자를 합친다면 만만찮은 세력이 되겟는걸”
“쫓기던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놈들의 발악이 가공하라는 점을 계산에 넣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우리 관광면 만을 놓고 보더라도 전·현직 면장을 필두로, 한남2리의 최상균, 최상수 형제를 꼽을 수 있잖는가?
특히 최상균 형제는 젊은 해녀들을 짓밟아온 희대의 치한들일 뿐만 아니라 식량공출, 탄광과 비행장 건설공사에 강제 동원하는 데 앞장서서 열렬한 일본인 앞잡이 노릇해온 대명사들인데….
능지처참해도 직성이 풀리지 않을 악질들이라구”
김순익은 입에 게거품 물고 빠드득 이를 갈며 분노를 터뜨렸다.
“최상균 형제는 우리 집 안에도 엄청난 손해를 끼친 장본인이라구. 농토를 망쳐놓앗었고…
천벌 받아 마땅한 악종들일세. 이런 경우를 들 수 있겠지. 그치들은 윗밭에 논을 만들고 흘러내리는 물을 몽땅 우리 밭에 쏟아 부은 게야. 10여년 동안 5백평 가량 농사를 못짓게 했다면 아무도 믿으려 들지 않을걸!
아버지가 고육지책으로 밭 일부를 잘라서 또랑을 만들어 물을 흘러보냈지. 어디 그 뿐인가? 바로 문제의 그 밭 동쪽 경계선 돌담이 홍수탓으로 그자들의 밭으로 무너졌는데, 그자들은 돌담을 제자리에 쌓지않고 활처럼 휘우듬하게 우리밭 귀퉁이를 잘라 먹었지 뭔가. 5∼6평이었지만…그런 날강도들 이라니까”
이만성의 말은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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