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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환 건국대 교수 |
모바일 폰이 안 터지는 지역이나 등산 시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답답할 때 대책은? 막걸리를 액정에 넓게 바른 다음 걸면 된다. 그러면 막걸린다.
이혼하기 싫으면 해야 하는 것은? 결혼하지 않는다.
크레딧 카드 정보 유출에 대한 대책은? 텔레마케팅을 전면 금지한다.
위의 난센스 퀴즈 중 마지막 퀴즈는 무려 1억4백만 건이라는 사상 최대규모의 카드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것이 알려진 지난 1월 관계당국이 대책이라고 실제로 내놓은 것을 아실 분들은 아실 것이다. 다행하게도 관계당국은 며칠 만에 이를 철회했다. 난센스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대책은 이 정도가 아니다. 지난 4월 정부는 어처구니 없게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정부의 시책에 맞춰 업체와의 계약취소를 했다. 그런데 수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위약금은 누가 책임 질 것 인가. 교육부는 법률해석까지 덧붙인다. "천재지변이나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위약금을 물지 않아도 되고, 닷새 전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경우에도 위약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부연 설명했다. 하지만 법이라는 게 교육부가 원하는 대로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교육부와 학교들에게 많은 금전적 손해를 끼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이 정도는 오히려 사소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직면한 문제에 대한 분석 없이 미봉책으로 국민을 옥죄고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는 엉터리 대책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닌 것들이 많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8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개인정보보호법” 이다. 필자는 지난 달 이 법의 문제점인 주민번호의 처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일보 5월 22일자 칼럼 “‘홍길동’을 ‘홍길동’이라고 부르게 하라” 참고) 그 칼럼이 나간 후 많은 질문을 받았다. 문제점을 쉬운 예를 포함하여 다시 한 번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홍길동”임을 식별하는 것하고 “홍길동”임을 인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식별은 "대구 사는 홍길동"이 "부산 사는 전우치" 혹은 "서울 사는 홍길수"하고 다른 사람임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인증은 어떤 사람이 실제로 "대구 사는 홍길동"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인증을 하기 위해서는 암호, 지문, 홍채인식, DNA 등의 추가적인 방법이 필요하지만 식별은 그냥 번호로 사용한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학번”, 입사를 하면 “사원번호” 등의 식별번호를 받게 된다. 주민번호는 학번이나 사원번호와 다를 바가 없는 숫자다.
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문패의 예를 들어보자. 문패에는 주소가 있어서 어떤 집이 옆집과 다른 집이라는 것을 식별하게 해준다. 그런데 편리하다는 이유로 문패에 대문열쇠를 붙여 놓고 쓴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문패만 가지면 대문을 열 수 있으므로 도둑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도둑을 막기 위해 문패 사용을 전면금지하고 국가에서 관리해야 할까?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이 바로 그런 경우다. 사람들이 문패에 대문열쇠를 붙여놓고 쓰다가 도둑이 많이 든다고 문패를 붙이지 못하게 하자는 격이다. 그래 놓고는 해결책으로 문패를 국가에서 인증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문패는 애초부터 인증할 필요가 없는 것일뿐더러 문패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식별자를 인증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주민번호도 마찬가지다.
물론 거의 모든 인터넷 싸이트에서 주민번호를 개인정보에 대한 열쇠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대부분의 싸이트가 “주민번호 뒷자리 7자리”를 쳐 넣으라고 요구한다. 이게 바로 주민번호를 암호처럼 사용하는 오용의 케이스다. 이런 오-남용의 케이스가 매우 많기 때문에 법으로 제정하여 주민번호의 수집이나 사용을 제한하고 온라인에서는 아이핀을 사용하게 하고 오프라인에서는 마이핀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쓰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인증회사들 돈 벌게 해주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인식번호인 주민번호를 금지하고 마이핀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은 휴대폰이 잘 안 터지는 것을 터지게 하기 위하여 액정에 막걸리를 바르는 정도의 난센스다. 이런 난센스에 예산 투입을 하는 국가나 법을 준수하기 위해 인력을 낭비하거나 외주업체를 고용해야 하는 기업들의 낭비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다. 사실상 향후 계속해서 액정에 막걸리 바르는 식의 대책인 마이핀을 사용하기 위하여 국가적인 낭비가 계속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휴대폰 액정에 막걸리 바르는 식의 대책을 강요하지 말라. 국가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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