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세 칼럼] 인문(人文)

    칼럼 / 오현세 / 2014-08-12 14:46:14
    • 카카오톡 보내기
    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사회 일각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말이 진작부터 있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였는데 세월호 참사와 윤일병 사건 등이 인문교육의 소홀 때문이라는 대통령의 지적이 나오자 갑자기 인문이 뜨고 있다. 천학 탓이라 국가에 문화융성위원회나 인문정신특별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위원회 주도로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도 인문을 주제로 하는 7대 중점 과제를 제시하고 당장 내년부터 교육과정을 개정하기로 했단다. 출구가 없어 보이던 현실에 한줄기 빛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위원회를 취재한 기사들을 보니 마냥 좋아 할 수만은 없지 싶다.

    우선 위원들이 인문정신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한 분은 배려와 덕성이라고 말씀하시고 또 다른 분은 민주시민의 기반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무슨 이런 모임이 다 있나 모르겠다. 인간에게 배려와 덕성을 기르는 과정과 민주시민의 기반이 되는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 어찌 같을 수 있나? 배려심 많고 덕이 높으면 훌륭한 민주시민이 될 터인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전투에 이기는 것과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다르니 전투에서 이기려면 적을 제압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을 포용하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당연히 방법이 달라진다. 인문교육을 시키려면 인문이 무엇인 지 모두가 같은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통일된 방법이 나오는 것 아닌가? 똑똑한 분들이라 어련히 잘 할까 싶지만 방정맞게 걱정이 앞선다.

    인문이란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문(文)이란 글자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진 집단이다. 그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이 어떤 사람인 지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예로부터 자신을 나타내는 기호를 몸에 그리거나 새겼다. 자신이 어느 집안 태생인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어떤 덕목을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 가 등을 몸에 새긴 것이다. 이 새긴 것이 문(文)이다.

    문(文)의 윗부분은 사람 인(人)의 변형이고 아래는 갖가지 문양을 뜻한다. 즉 문신으로 이해하면 정확하다. 이처럼 문(文)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표시한 매우 실제적인 글자다. 정체성은 개인이 지니고 있는 본질이니 곧 문(文)은 한 인간의 본질을 표시하는 글자인 것이다.

    지구상의 일부 종족들은 아직도 집단 전체가 몸에 문신을 한다. 종족 표시와 집단에서의 위치는 물론 자기가 닮고 싶은 동물들의 문양을 표시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다. 현대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한동안 기피 대상이었던 직접 몸에 새기는 문신이 이제는 일반화되기에 이르렀지만 몸에 새기는 문신만 문신이 아니다. 제복의 모양도 제복에 붙은 계급장도 문신의 변형이라 하겠고 명함도 일종의 문신으로 볼 수 있다. 모양과 로고와 직함이 몸이 아니라 옷이나 종이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때문에 문신을 새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으며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곧 인문은 사람에게 남에게 자신을 어떻게 알릴까 생각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니 그러려면 우선 자신이 어떤 존재인 지부터 알아야 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철학이 생긴다. 선비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정신적인 지주다. 이 선비 언(彦)자를 봐도 수염(彡터럭 삼)을 기른 얼굴 이마(厂 이마 엄)에 문신을 하고 있다.

    이런 문신을 하고 있으면서 그 문신의 뜻을 모르니 사단이 난다. 선장이란 표식을 단 제복을 입고 있으면서 선장의 역할을 팽개치고 계급장을 달고 있으면 그 계급장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니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고학년 문신은 아래 학년을 괴롭혀도 되는 권리로 잘못 알고 있으니 학교에 폭력이 난무하고 높은 계급도 높은 직급도 갑의 위치라는 문신도 문(文)의 의미를 모르는 인간들의 몸에 붙어 있으니 곳곳에서 참극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부디 인문 교육이 단발성 외침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제발 얼기설기 조직이나 만들고 매뉴얼이나 만들다 말거면 차라리 희망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쉬는 시간에 소설을 읽는 학생의 책을 뺏으며 그 시간에 수학문제 하나라도 더 풀라는 선생님들부터 사라졌으면 좋겠다. 국가의 수장이 나섰다고 나라가 하루아침에 인문화된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문(文)은 인간의 정체성이자 본질이고 만물의 본질은 질서다. 그래서 하늘의 질서는 천문(天文)이고 사람의 질서는 인문(人文)인 것이다. 문의 뜻이 흐려지니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입에 담기조차 몸서리쳐지는 작금의 사건들을 보면 인간 사회의 질서가 무너짐에 그치지 않고 하늘의 질서까지 무너질까 두렵다. 천벌이 두렵다는 말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현세 오현세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